독서일기(소설) 148

한 명을 읽고

1. 개괄 김숨이 쓴 소설 '한 명'을 읽었다. 세월이 흘러, 생존해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분뿐인 그 어느 날을 시점으로 소설을 쓴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미주로 달았다. 주인공은 그녀로 호칭되다가 끝에서 풍길이라고 밝힌다. 2. 발췌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둘이었는데 간밤 한 명이 세상을 떠나. 혼자만 살아 돌아온 게 죄가 되나? 살아 돌아온 곳이 지옥이어도? 그녀는 신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찡그린 표정일까, 화가 난 표정일까, 체념한 표정일까, 안쓰러움이 담긴 표정일까. 눈을 감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그녀는 잠들려 애쓰지 않는다. 인간이 잠을 안 자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지난 70년 동안 그녀는 온전히 잠들었던 적..

방관시대의 사람들을 읽고

1. 개괄 류전윈이 쓴 소설 '방관시대의 사람들'을 읽었다. 그는 중국 런민대 문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 소설에서는 뉴샤오리, 리안방, 양카이퉈, 마충청이라는 각기 다른 신분을 가진 네 사람이 무수한 사건을 만들고 그 진행과 반전의 과정에서 삶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요약될 수 있는 지난 40년 중국사회의 변화가 가져온 대표적 현상이 방관이라고 한다. 극단적 타자화, 유대감의 극단적 상실이 이 소설의 제목이 갖는 함의일 수 있다고 역자는 설명한다. 2. 발췌 뉴샤오리는 세상에 가난한 사람이 많은 것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치소나 감옥에 처넣을 수는 있지만 사회 안에서 녀석을 가둬둘 울타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사회라는 울타리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사람이 악의에..

저녁이 깊다를 읽고

1. 개괄 이혜경 작가가 쓴 소설 '저녁이 깊다'를 읽었다. 그녀는 1982년 등단하였다. 소설 속에서 박지표와 정기주가 초등학교 때 만나 30대까지 우정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지지해준다. 2. 발췌 볕은 가난하든 부자든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비춘다. 온몸에 쏟아진 아침 볕의 다사로움에,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도 느슨해지는 듯하다. 사람이든 사랑이든 물질이든 무언가에 홀리는 것, 열정이라는 게 얼마나 아름답고 힘 있는지, 그 반면에 얼마나 위험하고 눈멀게 하는지까지도 알려주었다. 지표는 세상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싶었다. 나무를 옮겨 심고 나면 뿌리 내릴 때까지 지주목을 받쳐주어야 한다. 태어난 곳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닌데 차별받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세상의 톱니와 내 톱니가 맞물리지 않는다는..

도공서란을 읽고

1. 개괄 손정미가 쓴 소설 '도공서란'을 읽었다. 고려청자를 빚은 도공들, 거란의 침입에 맞섰던 강감찬의 귀주대첩을 다루었다. 서란은 도공으로 청자장구를 빚고 전사로 귀주대첩에 참전한다. 서란과 무애가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2. 발췌 사람 그리고 여기에 있는 풀과 나무를 보아라. 이 모두가 하늘의 뜻에 따라 지어졌다. 하늘이 온전하고 선한 마음으로 지어내신 것이지. 하늘의 참뜻에 따라 지어진 만물은 하늘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거든. 만물을 이롭게 하는 것이 그 본성이다. 3. 소감 고려, 요나라로 장소를 이동하고, 서희장군과 강감찬 장군을 역사로 연결하며, 도공 인청과 마례를 부모로 두었어나 어릴 때 어머니가 집을 떠났고 도공으로 모녀가 재회하는 장면까지 재미 있는 소설이다. 2020. 10..

복자에게

1. 개괄 김금희가 쓴 소설 '복자에게'를 읽었다. 주인공 이영초롱은 어릴 적 가정형편 때문에 제주 고고리섬에서 보건소 의사를 하던 고모 집에 얹혀 살았다. 거기에서 친구 고복자를 만났고 안 좋게 헤어진다. 둘은 이영초롱이 판사가 되어 성산법원에 발령이 나며 다시 만난다. 고복자는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산업재해로 유산을 하나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지 못하자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그 사건을 이영초롱이 맡는다. 사건당사자와 친구라는 관계가 밝혀지고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사실도 드러나면서 이영초롱이 법관직을 그만두고 프랑스 인권법연구소에 파견을 가면서 고복자와 다시 헤어진다. 그곳에서 복자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2. 발췌 부장은 내가 시들어가는 과정을 누구보다 안타까워..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고

1. 개괄 박상영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었다. 4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주인공은 게이다.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2. 발췌 레위기 20장. 반드시 죽여야 하는 죄: 13절,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내게 있어서 사랑은 한껏 달아올라 제어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가 비로소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추악하게 변질되어버리고야 마는 찰나의 상태에 불과했다. 밤이 끝나는 시점과 해가 뜨는 시점은 이어져 있으니까. 지금 이렇게 설레는 감정이 이는 것은, 결국 우리가 완벽히 끝날 때가 되어간다는 의미겠지. 2020. 10. 27. 서울에서 자작나무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고

1. 개괄 황정은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었다. 소제목이 4개인데,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소라, 나나, 나기, 나나이다. 소라와 나나는 자매이고, 이들과 나기는 어릴 적 옆집에 살았고 나기 어머니가 지은 밥을 함께 먹은 사이다. 나기는 동성애자이다. 나나는 아이를 임신하지만 아이의 아버지와 결혼하는 것은 거부한다. 등장인물들의 가족관계는 대체로 사랑을 키우지 못한다. 2. 발췌 애자는 나나와 나에게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준 뒤, 언제고 그런 식으로 중단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덧붙였다. 너희의 아버지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특별해서 그런일을 겪은 것은 아니란다. 그게 인생의 본질이란다. 허망하고.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므로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단다. 바라보면 바라보고 바라보니..

피프티 피플을 읽고

1. 개괄 정세랑이 쓴 소설 '피프티 피플'을 읽었다.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이다. 병원을 매개로 서로 연결된다. 소제목을 사람 이름으로 정한 것이 눈에 띄었다. 2. 발췌 소년의 꿈이 이루어지는 건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그걸 깨달은 건 소년기를 한참 벗어나서였지만 말이다.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

기억을 읽고

1. 개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소설 '기억'을 읽었다. 역사교사인 르네가 퇴행 최면을 통해 최초 전생인 아틀란티스인 게브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모험을 담고 있다. 주인공 르네, 오팔의 로맨스도 담고 있다. 2. 발췌 당신이라고 믿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 역사 교사인 제 눈에 지금 세계는 기억 상실을 앓고 있어요. 과거의 실수들이 초래한 결과를 망각했기 때문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거죠. 다행히 아직 센강에 시신이 떠올랐다는 뉴스는 들리지 않는다...그 일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야. 내가 잊어버리기만 하면 돼. 그럼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게 될 거야. 순전히 게으름 때문에 과거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이나,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과거..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읽고

1. 개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읽었다. 작가는 1956년 미국에서 태어나 2009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소설엔 일리노이주 앰캐시를 배경으로 하는 총 아홉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삶의 어느 시기에 계급과 폭력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하나는 수치심일 것인데, 이 소설은 여러 상황과 인물을 통해 수치심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연민이란 이 각막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치유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민이 우리 인간을 구원한다고, 연민은 인류에 대한 희망이자 사랑임을 보여준다. 2. 발췌 그리고 자책한다는 것, 음, 자책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일에 대하여 미안해할 수 있다는 것-그것이 우리를 계속 인간이게 해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