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소설)

복자에게

자작나무의숲 2020. 10. 30. 22:45
1. 개괄
김금희가 쓴 소설 '복자에게'를 읽었다. 주인공 이영초롱은 어릴 적 가정형편 때문에 제주 고고리섬에서 보건소 의사를 하던 고모 집에 얹혀 살았다.

거기에서 친구 고복자를 만났고 안 좋게 헤어진다. 둘은 이영초롱이 판사가 되어 성산법원에 발령이 나며 다시 만난다.

고복자는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산업재해로 유산을 하나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지 못하자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그 사건을 이영초롱이 맡는다.

사건당사자와 친구라는 관계가 밝혀지고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사실도 드러나면서 이영초롱이 법관직을 그만두고 프랑스 인권법연구소에 파견을 가면서 고복자와 다시 헤어진다. 그곳에서 복자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2. 발췌
부장은 내가 시들어가는 과정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며 지켜본 사람이었다.

내가 과거 이야기를 하지 않고 딱히 그리운 시절도 없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건 다 잊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무거워서 어딘가에 놓고 왔을 뿐이었다.

너가 나중에 얼마나 고고리를 기억하겠니? 거의 잊힐 거야. 하지만 만약 마음에 미안함이 인다면 그것만은 간직하고 살아가렴. 미안함이야말로 가장 인간적 감정이니까.

그렇게 위에서 보니 모든 것이 한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드론이 내려앉아 지붕의 시점이 되고 잠자리들의 시점이 되고 우리의 눈높이가 되고 갯강구들의 자리까지 내려와 착륙하면 슬픔이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결국 법은 칼이 아니라 저울 아니에요. 공정하게 측정해주셔야지 편을 들면 돼요?

상처가 깊은 사람에게는 누군가를 믿을 힘이 없다는 것, 눈으로 보이지 않는 편까지 헤아려 누군가의 선의를 알아주기 힘들다는 것까지는 나 역시 헤아리지 못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에 불과하다고...법을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의 면면도 최소한에 불과한 거야.

3. 소감
이제껏 읽었던 한국 소설 중 판사의 실존적 고민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고모 이정희가 자신의 증언으로 친구 이규정이 자살방조죄 등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고 자책하며 살아가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결코 미워하지 않을 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느낌이다.

2020. 10. 30. 서울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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