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소설)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6. 11. 20. 18:51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었다. 몇해 전부터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눈도장만 찍고 있다가 어제 마침 짬이 나 책을 들었다. 중간에 책을 놓을 수가 없어 밤 12시 무렵 책을 다읽고 잤다.

 

괭이부리말은 인천 만석동에 있는 빈촌이다. 작가도 그곳에서 1987년부터 살아왔다고 한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소설임에는 틀림없지만, 주변에 흔히 있을 것 같은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다.

 

숙자와 숙희는 쌍둥이 자매이다.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해서 빚을 잔뜩 지자 어머니가 가출한다.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거듭된 사과를 받고 망설이던 중에 임신 사실을 알고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버지가 산업재해를 당하여 사망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받은  보상금으로 비디오 가게를 열어 임신한 몸으로 밤늦게까지 일을 하나, 주위에 크고 화려한 비디오 가게가 여럿 들어서는 바람에 생활이 고단하다. 

 

동수와 동준은 형제이다. 어머니가 먼저 집을 나가고 아버지도 집을 나간다. 동수는 부모가 떠난 집에서 습관적으로 본드를 마신다. 동준은 그런 형을 안타깝게 바라보나 뾰족한 수는 없다.

 

영호는 괭이부리말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고 있는데 어머니가 자궁암으로 죽는다. 영호는 우연히 동수가 친구 명환과 함께 본드하는 광경을 본다. 영호는 알 수 없는 책임감을 느껴 동수, 동준, 명환을 자신의 집에서 데리고 살 뿐만 아니라, 먼 공사현장에서 안정된 일거리가 생겼지만 동수와 동준, 명환이 걱정이 되어 이를 거절한다. 그러나 영호의 보살핌에도 아랑곳없이 동수는 또 본드를 흡입하게 되고 이 일로 구속된다.

 

명희는 숙자의 담임선생이다. 명희는 괭이부리말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으나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자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다. 교사발령을 받고 괭이부리말 초등학교에 근무하지만, 햇수만 채우고 도심으로 전근갈 것을 생각하던 중에 숙자를 통하여 초등학교 동창인 영호를 만난다.

 

영호가 어머니가 남겨 준 재산을 털어 변호사를 선임하는 노력 끝에 동수는 석방된다. 명희가 대학원 과정으로 상담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된 영호는 명희에게 본드흡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수를 상담치료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우여곡절 끝에 명희는 영호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매주 1회씩 동수가 살고 있는 영호네 집을 방문한다. 만남을 거듭하면서 동수는 조금씩 명희에게 마음을 연다.

 

명희는 영호와 동수, 동준, 명환, 숙자, 숙희가 어울려 사는 모습에 어울리다가 가난이 싫어 떠난 괭이부리말로 다시 이사를 온다.

 

여러 사람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얼키고설키면서 소설은 완성되어 간다. 그리고 끝내는 한 가족처럼 응고된다.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본 사람은 동수다.

부모의 가출에 마음 둘 곳을 잃어 본드에 탐닉하다가 영호, 명희의 도움으로 공장에 취직함과 동시에 야간 고교에 진학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열어나간다.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을 보면 그들의 과거가 동수의 과거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매 공판마다 법정에 출석하여 안타까운 눈으로 피고인을 쳐다보는 부모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모들이 가출했거나 피고인에게 지쳐서 법정에 나타나지 않는다. 영호, 명희 같은 후원자를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찌할 것인가? 고민될 때가 많다.

 

때로는 시민단체에 도움을 청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국가기관의 도움을 얻어 교육 및 상담을 통하여 또는 약물중독치료를 통하여 성찰 및 재활의 기회를 주려고 하나, 범죄의 습벽이 뚜렷하거나 죄질이 불량할 때는 그럴 수도 없다.

 

맹자의 말처럼 無恒産 無恒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恒産이 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고 나니 마음이 무겁다.

 

              2006. 11. 20. 창원에서 문형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