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이 깬 뒤로 더 이상 잠이 오지 아니하였다. 이oo 실무관과 함께 세느강을 산책하였다. 7시쯤되었는데(한국과 시차는 7시간 또는 8시간으로서 써머타임제를 시행하고 있는 관계로 한국은 당일 오후 2시가 된다) 그곳이 써머타임제를 시행하여(10월 마지막 일요일 즈음 서머타임제를 해지한다고 한다) 해는 뜨지 아니하였다. 세느 강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강폭이 진주에 있는 남강보다 훨씬 작았다. 호텔 주변은 공업지역이라 강 옆으로는 그냥 평범한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간혹 조깅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세느강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환한 미소로 기다려주었다.
아침은 호텔 지하에 있는 부페식당에서 하였다. 빵이 참 맛있었다. 평소에는 양식을 거의 먹지 아니하지만, 이왕 파리를 보러 온 이상 파리식으로 먹어보기로 하였다. 치즈에 과일에 계란에 커피에 먹을 만하였다.
첫 행선지는 루브르 박물관이었다(입장료는 8.5유로였다). 루부르는 요새라는 뜻이라고 한다. 단체관람은 로컬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하고 시간도 제한되어 있다고 하여 서둘렀다.
그곳에서 1시간 남짓 둘러 본 그림은 마리안느의 '제리코의 뗏목', 나폴레옹 대관식 그림, 모나리자,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여 평범한 처녀가 가슴을 풀어헤친 그림 등이었고, 밀로의 비너스상, 왕관 등을 더 볼 수 있었다. 특히 나폴레옹 대관식 그림에는 왕관을 교황이 나폴레옹에게 씌우는 형식이 아니라 나폴레옹이 손수 들고 있는 게 특징이었다. 권력을 스스로 쟁취하였다는 의미라고 한다. 서양화에서는 화가의 모습을 그림 속에 넣는 경우가 많다는데, 이 그림에도 화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특히 나폴레옹의 누이들이 5명 정도 등장하는데, 화가는 왼쪽에서 2번째 누이를 사랑했다고 한다).
두번째 행선지는 콩코드 광장이었다. 콩코드는 말이 화합이라고 한다. 프랑스 대혁명 때 그곳에서 루이 16세가 처형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콩크드 광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부근에 상제리제 거리, 개선문이 있었다. 개선문에는 나폴레옹이 승리는 거둔 전장, 함께 했던 장수들의 이름을 적어둔 것이 인상적이었으며(특히 전사자는 이름밑에 줄을 그어 구별을 하고 있었다), 개선문 위로 올라가면 파리를 조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상제리제 거리에는 고급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일행은 1행짜리 엽서를 노점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에펠탑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에펠탑에는 사람이 많아서 그 정상으로 올라가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원래 에펠탑은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철제 조형물인데, 당시 계획은 박람회가 끝나면 철거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위성안테나를 설치할 곳이 없어 그 철거를 보류하다가 예술성을 인정받아 오늘날까지 존치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의 아이러니..
달팽이 요리를 겯들인 점심을 먹고 몽마르뜨 언덕을 갔다. 파리는 평지인데 몽마르뜨 언덕에서 보니 파리가 한 눈에들어왔다. 그 정상엔 성당이 있었다. 프랑스가 전쟁에서 연거푼 진 다음 그 패인이 신심의 부족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신심을 모으는 방편으로 정상에 성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 출입문이 두개 있었는데 한명씩 거지가 구걸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몽마르뜨의 노천 카페에서 커피 한잔씩을 먹었다. 몽마르뜨 가게에서는 기념물을 싸게 살 수 있다고한다. 노트르담 사원은 버스가 들어갈 수가 없어 들어가지 못했고, 유람선 위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마지막 행선지로 바또무슈라는 유람선을 타기로 하였다. 장 브뤼엘이 전쟁이 막 끝난 무렵 지친 파리지엔들에게 삶에 대한 애착과 즐거움을 찾게 해주어야겠다는 소망으로 독특한 스타일의 배를 창안하게 되었는데 그 배가 바또무슈라고 한다. 세느 강 좌우로 늘어 서 있는 유적을 관람하는 데 매우 적합해 보였다.
가끔씩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1시간 15분에 걸쳐 진행된 유람선 관광에는 에펠탑, 노트르담 사원, 자유의 여신상, 의사당 건물, 콩코드 다리(바스티유 감옥에서 나온 돌로 그 일부를 만들었다고 한다), 시테 섬, 부르봉 팔레, 꽁꼬르드 광장, 개선문, 나폴레옹 무덤 등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유적이 늘어서 있었다.
원래 파리는 시테 섬이 모체라고 하였고 그 시테 섬에 사는 사람을 파리지엥이라고 한 데서 파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한다. 유람선에서는 각국의 언어로 유적을 소개하였는데,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가 나란히 나오는 것이 동아시아 시대의 도래를 보는 것 같아 남달랐다.
저녁엔 한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21:10경 드골공항에서 스위스 바젤로 향하는 에어프랑스 3288편을 탑승하였다. 그런데 그곳 공항 직원의 일처리는 속이 터질 정도로 늦었다. 비행기도 작았고, 기내 서비스도 실망스러웠다. 22:20경 바젤 공항에 도착했는데 일행 중 1인의 짐이 나오지 아니하여 공항 직원에게 이의를 한 결과 10분 이상 지난 끝에 여직원 1명이 가방 하나를 찾아왔다.
그곳은 스위스 바젤공항과 프랑스의 물하우스 공항이 같이 사용한다고 하였다. 그곳에서 내려 조금만 이동하면 독일로 넘어 갈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국경지대인 셈인데, 스위스 바젤공항이 프랑스의 물하우스 공항과 같이 사용한다니..알 수 없는 곳이 유럽이었다. 황태욱 선생의 안내로 바젤에 있는 commerce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가족이 경영하는 호텔이었는데, 2동으로 되어 있고 5층까지 있었다. 이렇게 국제화 연수 2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 밤은 새벽에 깨었지만 첫날 밤보다는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아래 사진은 루브르 박물관 앞)
2006. 10. 29. 창원에서 자작나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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