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안희경이 쓴 <문명, 그 길을 묻다>를 읽었다. 저자는 재미 저널리스트다. 저자는 이 시대 석학 11명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경향신문에 연재하였고, 이를 출간하게 되었다. 저자가 만난 석학들은 재레드 다이아몬드, 제레미 리프킨, 노암 촘스키, 장 지글러, 지그문트 바우만, 하워드 가드너, A.T. 아리야라트네 등이다.
2. 발췌
인간은 마지막 물고기를 잡고서야 돈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인디언 예언).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입니다. 화석원료를 사용하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바람이나 태양 같은 자연을 활용하여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겠다는 의지 말입니다.
지속 가능한 경제란 생산에 맞춰 소비하는 것입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가난한 사람의 가슴에 분노가 일렁인다면 이는 부자 나라에 문제를 야기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즉 세계화로 인해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도 함께 세계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속 가능한 경제는 곧 ‘함께 사는’ 경제를 말합니다. 자원이 이윤 추구로 가는 구조가 아닌, 이윤을 위해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유지되도록 규제하는 경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리더의 역할은 사회의 안녕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모두가 안녕해야 해요. 1퍼센트만 안녕해서는 안 됩니다(이상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금 독일이 하는 것처럼 말이죠. 모든 한국인이 자기 집 마당에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이를 ‘Power to the people' 즉 국민에게 권력을 쥐어줬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제레미 리프킨).
자연에는 동종 간의 경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종 간의 경쟁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늑대는 토끼를 잡아먹는다(피터 싱어).
무역협정들은 자본은 자유로이 이동하되 사람들은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노암 촘스키).
30년 넘게 사회구조와 공공의 건강이 맞물려온 관계를 드러내왔고,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해법을 제시해온 리처드 월킨슨 박사를 만난다...“런던정부기관에서 공무원을 상대로 10년 동안 공들여 한 연구입니다....나이가 같을 경우 지위가 높은 사람이 건강했어요. 건강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권력이었습니다.” “평등과 건강, 사회의 결속은 함께 갑니다” “메이저리그 야구팀을 대상으로 28개팀에 속한 1,600명을 조사한 연구결과가 있습니다...선수들 사이의 소득 차이가 적은 팀일수록 좋은 성적을 낸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의 의회가 무언가 법적 효력을 결정해도 그 구속력은 한국 안에서만 발휘될 뿐입니다. 국경 저 너머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죠. 그런데 문제는 세상 다른 곳에서 뻗어 들어오고 있다는 거에요. 이렇게 권력과 정치가 이혼한 상태가 된 겁니다(지그문트 바우만).
벤저민 바버가 말하기를 “오직 하나의 희망은 도시다”라고 했다. 서울, 런던, 뉴욕 같은 도시들이 공동체의 질도 유지하며 큰 사회의 질을 수행하는 데 적당한 크기라는 것이다.
젊어서 상상할 때 진보란 얽히고설킨 장애 없이 똑바로 앞으로 나아가는 행진이라고 여겼습니다. 구부러진 비틀림 없이 말이죠. 그러나 실제 진보는 추의 운동과 같습니다(지그문트 비우만).
인문학의 가치란 앎이 삶으로 이어질 때 생명을 얻는다.
사회가 보다 건강할 때는 여러 가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할 때입니다(하워드 가드너).
제 생각에 행복은 내가 생산적인 존재일 때 찾아옵니다. 생산적인 존재라는 것은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존재입니다(하워드 가드너).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 ‘재난사회’가 있다. 이는 너무 늦은 상태를 말한다. ‘위험 사회’의 경우는 조종간만 잘 작동하면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재난 사회는 몰락을 느끼는 공포가 구성원을 사로잡는 지경이다.
빈부의 차이가 크면 국민이 우울하다(미하이 칙센트미하이).
'The Last, The First'에요. 마하트마 간디가 우리에게 남긴 말입니다. 진정한 개발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한 그 사회 속 마지막에 놓인 사람이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겁니다(아리야라트네).
3. 소감
인문학의 가치란 앎이 삶으로 이어질 때 생명을 얻는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석학을 만나 문명의 길을 묻겠다고 생각하는 게 놀라웠다. 그것을 실행한 것은 더 놀라웠다. 앎을 삶에서 실천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일독을 권한다.
2015. 9. 3. 창원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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