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소설가의 일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4. 11. 29. 17:16

1. 개괄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읽었다. 저자는 소설가이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를 쓴 바 있다. 이 책은 소설가란 무엇인가? 저자는 어떻게 하여 소설가가 되었는가?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다.

 

2. 발췌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나면 그건 도무지 내가 쓴 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새로운 사람, 즉 신인이 됐다.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거라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마라(릴케)

 

해서 무기력은 현대인의 기본적 소양이다. 그런 무기력의 양대 산맥이 바로 현대 연애와 암 선고다. 내 뜻과 무관하게 느닷없이 찿아오는 질병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연인을 견디는 일이 현대소설의 본질이 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사랑이라는 게 뭔가? 그건 그 사람에 대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을 자기처럼 사랑하는 것, 즉 그 사람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소설가에게 필요한 동사는 세 가지다. '쓴다' '생각한다' '다시 쓴다'

 

소설가가 질문을 만드는 방식에 대해서는 앞에서 계속 설명했다. 즉 소설가에게는 두 개의 상자가 있다. 각각 '왜?'와 '어떻게?'라는 의문사가 들어 있는 상자들이다.

 

결론적으로 소설가는 모든 질문에 구체적으로, 그리고 핍진성 있게 대답하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작가가 되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는 선택되는 것이다(폴 오스터)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 성장한다.

 

먼저 소설가가 되어야만 소설을 쓸 수 있는게 아니라 먼저 뭔가를 써야만 소설가가 될 수 있다.

 

뇌과학에는 반복된 경험이 뇌의 구조를 바꾼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신경가소성이라는 용어가 있다. 반복하면 할수록 뇌의 구조가 바뀌기 때문에 어떤 일을 계속 연습하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20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과학적으로 확인됐다.

 

말은 그 속성상 관계 속에서 속내를 왜곡한다. 진짜 원하는 바가 뭔지 알고 싶다면 표정, 몸짓, 행동을 관찰해야 한다.

 

문학적 표현이란 진부한 말들을 새롭게 표현하는 걸 뜻한다.

 

소설가는 그가 어떤 정치적 신념을 지녔든 진보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소설은 변화의 이야기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건 니체의 말이지만, 이는 사람들을 자신의 이야기에 감정이입시키는 데에도 유용하다.

 

울트라마린을 모르면 울트라마린을 보지 못하듯이 '지벅거리다'라는 단어를 모르면 지벅거리는 사람을 묘사하지 못한다.

 

소설가는 내용을 쓰는 사람일까, 문장을 쓰는 사람일까? 물론 정답은 내용과 문장을 동시에 쓰는 사람이다, 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번 소설을 쓴 입장에서 보자면 소설가는 문장'만'을 쓰는 사람에 가깝다.

 

한국어 문장에서 서술어 부분이 한없이 애매하고 모호하게 늘어지는 이유 역시 우리의 심연에 공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질문 앞에서 어떤 내용도 들어 있지 않은 대답을 하기 위해서.

 

소설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문장을 쓰는 일이다.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

 

소설가의 일이 무엇인지 한다미로 말하라면, 나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느리게 글 쓰는 일"이라고 대답하겠다.

 

본래 이름은 두아채(豆芽菜)였다던 그 나물에다가 '숙주'라는 이름을 붙인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세조 때 단종에게 충성을 맹세한 여섯 신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일로 백성들의 미움을 받게 된 신숙주에게서 따온 것이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3. 소감

어느 학술단체 회장 연설에서 소설가 김연수의 글이 인용되는 걸 들었다. 그 때문에 이 책을 골랐다. 이제 김연수의 소설을 읽어 볼 차례다.

 

                   2014. 11. 29.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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