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마사 너스바움이 쓴 <혐오와 수치심>을 읽었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서 미국 시카고대학교 로스쿨과 철학과의 법학 윤리학 석좌교수다. 이 책은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감정과 법 (2) 혐오와 우리의 동물적 육체, (3)혐오와 법, (4) 얼굴에 새기기: 수치심과 낙인, (5) 시민들에게 수치심을 주어야 하는가? (6) 수치심으로부터 시민들 보호하기 (7) 인간성을 숨기지 않는 자유주의가 그것이다. 끝부분에 김영란 전 대법관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전체적인 주제는 수치심과 혐오는 분노와 두려움과 다르다는 것이다...저자는 혐오에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그것이 어떠한 행위를 범죄행위로 규정하는 일차적 기반이 되어서는 안 되며, 현재 하고 있는 것처럼 형법에서 죄를 무겁게 하거나 경감시키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수치심은 선을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공적 삶에서 규범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자유주의적인 사회는 수치심을 억제하고, 시민이 수치심을 겪지 않도록 보호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2. 발췌
인간을 사회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이며, 우리 마음을 인간애로 이끌고 가는 것은 우리들이 공유하는 비참합이다.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면 우리는 전혀 인간에 대한 의무가 없을 것이다...나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무엇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루소 <에밀> 중에서)
왜 왕들은 자신의 신민들에게 연민이 없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을 결코 인간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루소)
믿음이 감정의 본질적 기반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혐오에 담긴 핵심적 사고는 자신이 오염될 것이라는 생각이며, 혐오의 감정은 자신을 오염시킬 수 있는 것에 대한 거부를 표현하다....이와 달리 분개는 부당함 또는 위해에 대한 사고가 중심을 이룬다.
혐오는 특정 집단을 베척하기 위한 사회적 무기
법원은 여성들이 핍쇼에 서는 것에 동의했다는 주장을 기각했다. 존엄성은 주관적인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의 뜻에 따라 양도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혐오가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추정상의 기준이 될 때, 그리고 특히 취약한 집단과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예속하고 주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때, 이는 위험한 사회적 감정이 된다.
내 설명이 옳다면, 법은 사회가 범죄에 대해 죄책감을 표현하고, 죄책감을 사회적인 동기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수치심은 보다 변하기 쉽고 신뢰하기 어려운 도구이기 때문이다.
낙인찍는 행위의 핵심은 피해자를 비인간화하는 것이다.
죄책감은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수치심은 인격에 주복한다. 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처벌은 "당신은 나쁜 행위를 저질렀습니다"라고 표명하지만,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당신은 결함을 지닌 사람입니다"라고 표명한다.
수치심을 주는 과정에서 국가는 단순히 확립된 국가 제도를 통해 처벌을 부과하는 것만은 아니다. 국가는 대중이 범죄자를 처벌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수치심은 자신을 반사회적 집단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강화시킨다. 범죄학자 브레이스웨이트가 최근에 수행한 경험적 연구는 "낙인이 위법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주장을 강력하게 지지해 준다.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행위 중에 실제로 위험을 야기하거나 위해로 볼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역겨움을 안겨 주는 경우만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사람이 호감을 사지 않는 행위를 보고 혐오를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행위를 법으로 규제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상식과 경험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기 방식대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것이 가장 바람작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한 자신의 방식이기 때문이다(밀)
낙인을 안겨주는 행위가 곳곳에 편재되어 있고 뿌리가 깊다는 점을 고려하면, 모든 개인을 동등하게 준중하고자 하는 사회에서는 혐오와 수치심이 법적 잣대로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분석은 수치심과 혐오를 공적인 동기로 활용하는 것은 낙인과 사회적 위계화를 조정할 위험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3. 소감
혐오에 기반하여 수치심을 주는 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날로 강화되고 있다. 이 책의 주장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2015. 6. 7.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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