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최후의 권력, 연방대법원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3. 5. 16. 21:22

1. 개괄

존 폴 스티븐스가 지은 <최후의 권력, 연방대법원>을 읽었다. 저자는 미국 역사상 연방대법원에서 세 번째로 오래 재직한 대법관으로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 책은 저자가 2010년 90세의 나이로 사임한 뒤 쓴 자서전인데 우리나라와 다르게 동료 대법관의 법리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면서도 거침없는 평가를 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한림국제대학원에서 미국법학을 가르치는 김영민 교수가 번역을 하였는데, 각주를 달아 미국법과 미국 사법 체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2. 발췌

헌법은 특정한 경제 이론을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법원이 어느 법령이 연방 헌법의 규정과 상충되는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특정 정책이 경제 이론에 비추어 자연스럽거나 친숙하게 또는 새롭거나 충격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사정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올리버 웬들 홈스 대법관)

 

대법원은 기존에 경쟁사이던 회사들이 결합하여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셔먼 법 위빈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에드워드 화이트 대법원장은 장문의 판결을 통해 이른바 '합리성의 원칙'을 제시했는데, 자유로운 거래를 불합리할 정도로 제한하는 행위는 연방 독점금지법 위반이 된다고 하였다.

 

받대 주장에도 설득력은 있으나 수정헌법 제14조 조항은 절차법은 물론 실체법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자유라고 총칭되는 모든 본질적 기본권은 연방헌법에 의해 보호 받는다(루이스 브랜다이스 대법관).

 

리드 대 리드 판결에서 워런 버거가 작성한 만장일치 의견서는 수정헌법 제14조에서 보장하는 평등 보호에 따라 (인종을 기반으로 한 차별처럼) 성을 기반으로 한 차별은 헌법의 의혹을 받을 수 있음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종신제 보장 제도가 있어서 연방판사들이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업무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처럼, 일단 대법원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이미 차단되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신경 쓰이는 것이 없어서 항소법원 일에 더 매진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에서 정책 문제는 다수결로 결정된다. 그래서 입법부와 행정부의 일은 대중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소송에 임하는 판사는 무엇보다 공정하고 인기에 초연해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다.

 

법률, 밧줄을 만드는 사람, 법률.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이 옳으냐가 아니라 무엇이 합법적이냐 하는 것이다....나는 신이 아니다......이 나라의 끝에서 끝까지 모두 법률로 채우자. 신의 법률이 아니라 사람의 법률로......그래, 나는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악마에게조차 법률의 혜택을 줄 것이다(토마스 모어)

 

1917년 주거지 통합에 따른 스트레스가 헌법상 권리를 부인하는 근거가 되지 못했듯이, 1984년 다인종으로 이루어진 집안이 자녀에게 안겨줄 문제도 헌법상 권리를 부인할 근거가 될 수 없다. 인종에 대한 편견으로 양육권 행사에 결격사유가 없는 친모의 품으로부터 어린아이를 빼앗가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워런 버거).

 

내가 작성한 의견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으로 셰브런USA 대 천연자원보호협회 사건(1984년)이 있는데, 우리는 이 사건에서 법령이 불분명한 경우 항소법원에서는 행정기관이 해석을 최대한 존중하여 받아들였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일말의 의혹이 있긴 하지만, 내가 존 로버츠 대법원장 취임식에 참석함으로써, 법의 공정한 집행이라는 우리의 공동 목표가 개인적 신념의 관철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믿고 싶다.

 

1972년 퍼먼 사건에서 대법원은 서명이 없는 한 단락짜리 의견서를 내놓았는데, 텍사스 주와 조지아 주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에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것은 헌법 제8조와 제14조가 금하는 잔혹하고 과도한 징벌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많은 문병국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했는데도 오늘날까지 미국에서 사형 제도가 살아남은 것은 바로 이 응징에 근거한 심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정헌법 제1조에 내포된 근본 원칙이 있다면, 어떤 사상을 사회에서 공격적이거나 불쾌하게 여긴다고 해서 정부가 그 사상의 표현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윌리엄 브렌넌 대법관).

 

텍사스 주 대 존슨 사건에서 피고는 레이건 정부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공공건물에 게양된 성조기에 등유를 뿌려 불태웠다. 피고가 처벌을 받은 이유는 정책에 항의를 표현했기 때문이 아니라 불법적인 방법으로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1976년 일반교서에서 미국은 "불쾌하게 행동하지 않고도 반대의견을 낼 수 있는 곳"이라고 세련되게 표현한 적이 있다.

 

3. 소감

18세기에 성문헌법을 만든 미국, 헌법조항에 영혼을 불어넣은 연방대법관, 재직시절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연방대법관의 자서전. 모두 부러웠다.

 

      2013. 5. 16.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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