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니코 멜레 <거대권력의 종말>을 읽었다. 저자는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이고 중 고교를 한국에서 다닌 바 있다. 이 책은 거대 언론, 거대 정당, 거대 엔터테인먼트, 거대 정부, 거대 군사력, 거대 지성, 거대 기업이 무너진 시대에 이웃과 지역 커뮤니티를 되살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 발췌
급진적 연결, 즉 방대한 데이터를 즉각적으로 끊임없이 전 세계 어디로든 보낼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은 전통적인 거대 기관을 급격히 뒤흔들고 기존 체제를 벗어난 신흥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며 정치 경제 문화 전 영역에 걸쳐 우리 사회를 뒤바꿔놓았다......급진적 연결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권력 행사를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
기술은 가치중립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술은 그 자체로 특정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 기기가 주는 편의와 재미에 빠져 생각할 틈도 없이 그 관점을 받아들인다.
포스트먼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노동을 줄이고 작업을 끝내기 위한 도구로 기술을 사용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도구가 문화적 사고 체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테크노폴리 상태에 이르면 도구가 더 이상 문화를 뒷받침하지 않고 오히려 문화를 지배하고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알렉스 존스가 말했듯, 감시자로서의 역할은 전통적인 언론의 핵심 역량이자 민주주의에서 언론이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기능이다.
거대 언론이 위기에 봉착하게 된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힘없는 비주류 언론에게 충분한 참여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해야 할 언론의 전통적인 의무를 소홀히 함으로써 스스로 시장점유율 하락을 초래하고 말았다.
급진적 연결로 언론 산업의 기본 가정들이 무너짐에 따라 급진적 연결이 빚어낸 현실을 수용하고 쇠퇴한 거대 언론 시대의 훌륭한 가치를 계승하여 언론 체계를 재편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주류 언론과의 연계성과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20명 미만의 기자들로 구성된 소규모 언론 조직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텍사스 트리뷴>은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대안 언론의 좋은 사례다.....2012년 겨울 기준으로 약 3000명의 회원들이 연간 50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내고 있으며, 특별한 행사나 특정 콘텐츠에 소요되는 비용은 기업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또 프리미엄 콘텐츠를 통해 추가 수입을 얻는 한편, 많은 노력을 기울여 확보한 주요 후원자들로부터 5000달러 이상의 기증품을 지원받는다.
2000년 11월 블로그를 시작한 이래 마셜은 1000명의 진정한 팬을 확보해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을 이루어왔다. 토킹 포인츠 메모는 20명의 직원과 소수의 필진으로 팀을 이루어 다양한 탐사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
<뉴요커> 컬럼니스트 A. J. 리블링은 1960년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보장된다." 급진적 연결은 리블링의 말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했다. 거대 언론이 무너지고 누구나 자유롭게 전 세계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오늘날, 우리는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 시대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이데올로기는 진보주의도 보수주의도 아니다. 권력층에 대한 반사적인 불신과 체제 개혁을 요구하는 끊임없는 외침, 즉 반기득권주의다(맷 바이 기자).
정당은 더 이상 유권자들이 원하는 정책을 제공함으로써 선거에서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력한 정책 요구자 연합체로서 자신만의 의제를 수립하고, 유권자들을 그에 동의하도록 이끌려고 한다.
정치가 부와 권력으로 이루어진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면 민주주의는 그만큼 더 빈곤해진다.
별에 묶여 있는 사람은 되돌아가지 않는다(지향점이 확실한 사람은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정부를 폐기하거나 욕조에 익사시킬 수 있을 만큼 작게 만드는 방안은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도자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고 급진적 연결이 제공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새로운 행정절차를 수립해야 한다.
미트업은 빠르게 인기를 얻으며 급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미트업은 미국 정치의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고, 사회 참여가 정치 참여와 정비례 관계에 있다는 퍼트넘의 이론을 입증했다.
한낮의 태양이 사람들의 행동을 비추면 살균과 정화가 이루어진다(루이스 브랜다이스 대법관).
연방 정부가 엄청남 양의 자료를 제공했지만 의미 있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의 핵심은 그곳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핵심은 지역사회에 있으며, 지역사회야말로 정부를 재구상하고 민주주의와 그 기능을 재고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또한 시민의 기본권을 인식하고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구상해야 하는 곳도 지역사회다.
"햇빛은 최고의 살균제다"라는 브랜다이스 대법관의 말과도 다르지 않다. 투명성은 서구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사회를 구성하는 기관들이 책임감을 갖게 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최고의 대학들은 그들의 존재이유가 경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키우는 것임을 잊어버렸다(윌리엄 데레시에비츠)
복잡계 정치학 및 경제학을 연구하는 프린스턴대학교 스콧 페이지 교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전문가들의 모임보다 어떻게 더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했다....페이지 교수는 문제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으며, 다양성은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에 더 빨리 도달하도록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최종적으로 거대 기업의 종말을 구성하는 모든 경향이 합쳐지면 그 정점에서 수공업 전문가 중심의 경제가 부상하게 될 것이다.
빌 매키븐은 이렇게 말한다. "운이 좋다면 우리는 거대한 소수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작은 다수로 이루어진 세상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분명하 목적을 세우고 의지대로 갈지, 마지못해 끌려갈지는 모르지만 흐름이 바뀌는 순간 우리는 그곳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주당 평균 22~24시간 동안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그중 몇 시간만 할애하면 온라인상에서, 또는 오프라인상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갖춘 지역 공동체를 일굴 수 있다.
결국 작은 힘이 우리를 구할 것이다. 단, 작은 힘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모두가 참여해 지속 가능한 소규모 지역 에너지원으로 연료를 대체하면 화석연료에 바탕을 둔 현재의 경제체제는 더욱 지속가능한 체제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3. 소감
이 책을 읽으면 뉴스타파의 존립이 이해가 될 것이다. 작은 다수가 지배하는 세상이라....그것이 민주주의의 모습 아닐까?
2013. 7. 10. 부산에서 자작나무
'독서일기(정치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제까지의 세계를 읽고 (0) | 2013.10.05 |
---|---|
여론과 법 정의의 다툼을 읽고 (0) | 2013.08.07 |
논쟁을 읽고 (0) | 2013.05.26 |
최후의 권력, 연방대법원을 읽고 (0) | 2013.05.16 |
권력의 조건을 읽고 (0) | 2013.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