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읽었다. 전자는 MIT 경제학과 교수이고, 후자는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다. 이 책의 요지는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적인 정치 경제 제도가 발전과 번영을 불러오고 지배계층만을 위한 수탈적이고 착취적인 제도는 정체와 빈곤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많은 사례를 제시하는데, 해방 전 동일한 조건하에 었었으나 지금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남한과 북한, 국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미국 애리조나 주 노갈레스와 멕시코 소노라 주 노칼레스가 자주 비교된다. 모범적 사례로 꼽는 것은 룰라가 이끈 브라질 노동당이다.
2. 발췌
미국에서는 공유지 불하조례, 자영농지법 등 잇따른 입법 활동 덕분에 변경의 미개척 토지를 많은 이들이 함께 향유할 수 있었다. 반면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정치권력자와 부유층, 연줄이 있는 자만 개척지의 과실을 누릴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이들은 더 강대해질 수 있었다.
이 책은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하는 데 경제제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 나라가 어떤 경제제도를 갖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와 정치제도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경제제도가 포용적이라는 것은 사유재산이 확고히 보장되고, 법체제가 공평무사하게 시행되며, 누구나 교환 및 계약이 가능한 공평한 경쟁환경을 보장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포용적 경제제도는 또한 새로운 기업의 참여를 허용하고 개인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
한국과 미국이 포용적 경제제도를 가질 수 있엇던 것은 이들이 다원적 정치제도뿐만 아니라 중앙집권체제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베버는 합법적인 폭력사용을 독점하는 것이 곧 정부라고 규정한 바 있다.....정부가 중앙집권화에 실패하면 그 사회는 소말리아처럼 곧 혼란에 빠지고 만다.
우리는 충분히 중앙집권화되고 다원적인 정치제도를 포용적 정치제도라고 부를 것이다. 두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한다면 착취적 정치제도라 할 만하다.
동유럽의 영주는 비교적 조직적이엇다. 그런대로 권리도 많았고 영지에 대한 지배력도 조금 더 강했다. 서유럽에비해 도시는 미약했고 작았으며 소작농의 결집력은 약했다. 역사적 큰 그림에서 본다면 작은 차이일지 모른다. 하지만 동서유유럽에서 흑사병으로 봉건질서가 흔들릴 때 일반 대중의 삶과 제도 발전의 운명을 완전히 갈라놓은 것도 바로 이런 작은 차이들이었다.
잉글랜드에서 명예혁명에 이어 몇십면 만에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688년 명예혁명 당시 왕실의 권한을 제한하고 더 다원적 제도들을 도입하기 위해 싸운 이들이 마침내 승리를 거둔 것은 역사적 운명이 아니었다. 이 정치혁명으로 이어지는 길의 방향을 결정한 것은 우발적인 사건들이었다.
착취적 제도는 두 가지 이유로 지속 가능한 기술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을 가장 중요한 교훈으로 삼아야 하다. 경제적 인센티브가 결여되어 있고 엘리트층의 반발이 심하기 때문이다.
신석기혁명에서 산업혁명까지 생활수준이 지속적으로 나아지지 않은 주된 이유는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 이중경제가 마침내 막을 내린 것은 1994년이었다. 인종장벽이 무너지고 자치지구가 사라진 것도 자연스러운 경제 개발의 결과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기본권을 무시하고 경제성장의 결실을 공유하지 않는 정권에 맞서 남아프리카 흑인들이 들고일어난 덕분이다.
다원주의와 법치주의 간에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고 선순환이 되풀이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명예혁명은 한 엘리트 집단이 다른 엘리트 집단을 전복시킨 것이 아니라 젠트리와 상인, 수공업자는 물론 휘그파와 토리당 파벌까지 가세한 광범위한 연합세력이 절대왕정에 반기를 들고 일으킨 혁명이었다.
점진적 변화는 또한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무리수를 막는 효과도 있었다. 폭력적인 체제 전복은 제거된 체제의 빈자리에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독점이 사라지지 않는 한 독점은 항상 정부의 머리 꼭대기에 군림하려 들 것이다. 나는 독점이 알아서 자제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미국 정부를 소유할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자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소유하려 들 것이다(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 1913년 <새로운 자유>에서).
20세기 전반 미국의 경험은 또한 사회에 두루 힘을 실어주고, 따라서 선순환을 일으키는 자유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지도 증명해준다.....포용적 정치제도하에서는 자유언론이 번성하고, 자유언론은 포용적 정치 경제제도에 대한 위협을 널리 알려 저항의 기운을 불어일으킨다.
다원주의적 정치제도하에서 권력을 공유하는 이들이 그런 파행이 거듭되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에 1720년대 영국의 월폴도 법원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이며, 미의회가 루스벨트의 법원 개혁안에 반기를 드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루스벨트에 제동을 건 것은 다름 아닌 선순환의 힘이었다.
자신의 권한을 제한하는 대법원의 굴레를 벗어던지려고 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블랙법을 곧장 시행하려 했던 로버트 월폴 경이 깨달은 바였다. 두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개인이나 소수 무리에 권력을 몰아주면 다원주의적 정치제도의 기반을 훼손할 위험이 따르며, 다원주의의 진정한 잣대는 그런 시도를 얼마나 잘 제압하느냐에 달려 있다.
역사는 두 번 되풀이 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카를 마르크스)
중국 공산당이 경제제도를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창조적 파괴의 범위가 극도로 제한되며 정치제도에서 급진적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3. 소감
이 책을 지금 대한민국에 대입하면 경제민주화가 절실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포용적 정치제도가 포용적 경제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포용적 경제제도를 만들려면 경제민주화가 절실하다.
2012. 12. 23.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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