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지그문트 바우만이 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읽었다. 저자는 근대성에 대한 오랜 천착으로 유명한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다. 이 책은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44개의 편지를 띄우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유동하는 근대란 기존 근대사회의 견고한 작동원리였던 구조 제도 풍속 도덕이 해체되면서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국면을 일컫는 바우만의 독창적인 핵심사상이다.
2. 발췌
이 유동하는 근대 세계는 항상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싫든 좋든, 알든 모르든, 기쁘든, 슬프든 간에 심지어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한곳에 머물러 있으려 해도 끊임없이 여행으로 내몰린다.
우리는 프라이버시를 방어하는 게 아니라 무심코 익명인들이 관람할 수 있는 공적인 영역으로 퍼다 나른다. 사적인 영역들을 말살하는 이런 일들이 통제할 수 없는 권력들이 아니라 프라이버시를 방어해야만 하는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심각하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보다 많은 양의 즐거움을 얻어내기 위해 즐거움의 질을 희생하고 있는 셈이다.
프라이버시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유일하고, 결코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주권이 유지되는 지대이자 주권을 지닌 사람들의 왕국이지 않으면 안 되는 영역이다.
쉴 새 없이 유지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특정한 활동을 위해 요구되는 그 용품이 아니라 바로 그 스타일이다. 게다가 그러한 스타일에 맞춰 요구되는 부대용품이 언제나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계속되는 속도만큼 더 필요하게 되기 마련이다.
수요는 이미 시장에 출시된 상품을 위해 반드시 창조되어야만 하며, 이 때문에 만족을 추구하려는 인간적인 욕구들의 논리를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이윤을 추구하려는 광고회사의 논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GNP에 의해 측정되는 한 국가의 개략적인 또는 평균적인 부는 사회적인 해악이라고 거론되는 여러 많은 항목들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에 반해서 부가 재분배되는 방식, 다시 말해 사회적인 불평등의 정도는 그러한 사회적 폐해들을 만연하게 하거나 더 강렬하게 할 정도로 아주 깊은 영향을 끼친다.
미국이 불평등 수준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드는 국가라면, 일본은 그 수준에서 가장 하위에 속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거의 10만 명 당 500명의 사람들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반면에, 일본에서는 10만 명 당 50명 정도만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위기란 낡은 것은 죽어 가는데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공위시대에는 매우 다양한 병적인 징후들이 출현한다(안토니오 그람시)
끊임없이 계속되는 우리들의 불확실한 상황은 어떤 힘에 대한 광범위하면서도 뿌리 깊은 열망을 배출한다.
아주 간단명료하게 표현하자면 그들은 집단적인 자기방어라는 합리적 행동을 약화시키고 경영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개인들끼리의 먹고 먹히는 치열한 경쟁을 끌어들이는 일을 확대할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이든 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화가 가져온 가장 큰 충격들은, 무엇보다도 정치로부터 권력이 분리되었다는 점, 말하자면 한때는 정치권력과 나란히 그 옆에서 수행되던 기능들이 시장으로 이동하고, 아래쪽으로, 즉 개인적인 삶-정치의 영역으로 이동했다는 점 말이다.
이처럼 존재로부터 당위를 분리시키고 너무나 자주 모든 것들이 존재하고 충돌하곤 하는 인간만의 특별하고도 독측한 존재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란, 아무런 경계도 없던 곳에 어떤 경계를 그려내면서 시작되었다.
토마스 하디가 "인간의 운명은 바로 그의 성격이다"라고 선언했을 때 그는 이미 이에 대해 언급했던 것이다.......그 삶의 예술가들이 과연 어떤 선택들을 하게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성격이다.
카뮈가 정의하는 지식인이라는 것도 바로 "자신의 마음이 (항상) 자기 마음 전체를 지켜보는 사람"이었다.
<반항하는 인간>에 등장하는 영웅인 프로메테우스는 시지프스와는 달리 그 부조리한 인간 조건에 대한 해결책으로 타인들을-위한-삶을, 곧 그 타인들과 비참한 고통에 맞서 반항하는-삶을 선택한다.
"나는 반항한다" 그렇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카뮈는 결론 내렸던 것이다.
바로 자신도 똑같은 이유로 그처럼 극도의 고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라는 그 자각이야말로 승리를 쟁취하는 길이다. 결코 그 어떤 운명도 경멸을 통해서는 극복될 수 없는 법이다(카뮈)
3. 소감
트위터 팔로워를 늘려가는 동안 내가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일까? 질문하고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라고 답한다. 그리고 고독은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부연한다.
2012. 10. 21.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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