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우충좌돌 중도의 재발견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8. 12. 08:00

인하대학교 철학과 김진석 교수 <우충좌돌 중도의 재발견>을 읽었다. 저자는 중도좌파를 자처하는 학자로서 보수와 진보 사이에 '우충좌돌' 하면서 중도를 만나고 그들을 구해낼 것을 주장한다. 책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중도가 유별나게 진보를 자처하지도 않고, 진보가 중도를 오만하게 내치지만 않으면 된다. 그 둘의 차이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연대와 협력을 낳고 키우기 위해서는 관용이 필요하다.

 

나는 강남좌파라는 표현대신에, 중도나 리버럴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를 바란다. 엄밀하게 말해서 그들의 의식은 좌파인데 생활은 우파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의식조차도 더 이상 좌파적이지 않다. 전통적인 좌파는 자본주의와 돈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이익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솔직한 중도는 포용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예민하고 뜨거운 문제들, 그것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가 신봉하는 원리나 이론에 너무 얽매이면 안 된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은 집단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크며, 틀에 박힌 원리와 이론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좌파 정당을 지지하면서 좌파/사회주의가 믿는 가치에 따라 사는 사람을 좌파라고 생각하고 싶다.

 

중도적 관점은 사람들의 행동에 스며든 구차스럽고 뻔뻔한 면면들을 들여다보고 되돌아보고, 또 자신에 비춰보는 일이다.

 

기본적으로는 개인의 자유를 긍정하되 사회적 평등도 일정하게 지원하는 것이 자유주의 혹은 리버럴의 기본적인 색채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어느 정도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또 너무 단순한 비판이다.

 

나는 등록금 문제에서 국립대와 사립대는 분리해야 한다고 여긴다. 국립이 아닌 사립대학은 일정하게 시장에 맡겨두자. 그 대신 국립은 지금보다 많이 싸게 하자. 무상 수준으로까지 가기는 힘들 듯하다.

 

한 한기에 70만 원 정도 수준인 고등학교 수업료도 무상은커녕 반값으로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대학생 모두에게 그런 혜택을 주는 데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립대 등록금은 빠른 시일 안에 반 정도로 줄이되 사립대학은 국고지원 확대를 통해 장학금 혜택을 늘리는 방식으로 등록금 문제에 접근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고졸자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풍토에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선순환이 일어나기 위한 사회적 조건 가운데 큰 것은, 고졸과 대졸 사이에 임금격차를 줄이는 일이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일, 개혁이든 진보든 보수든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라고 나는 본다.

 

유럽 나라들에서 교육경쟁이 심하지 않은 것은 그저 그 사람들의 심성이 착해서가 아니라, 경쟁을 크게 하지 않

아도 웬만큼 살 수 있는 사회적 국제적 환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늘어나는 노인문제의 한 축은 사실 자녀들의 늘어난 교육기간과 취업준비기간 때문에 생긴다.

 

프랑스는 교육은 무료로 하면서도 급식비는 부모의 소득과 연계해 등급별로 내게 한다.....급식비를 교사들이 관리하지 않고 자치단체에서 관리하기에, 저소득층 학생들이 학교에서 차별받을 일도 없다.

 

보수가 아예 복지에 대해 말할 권리가 없다고 여긴다면, 턱없는 오만이거나 엄청난 착각이다. 역사에서 복지를 국가 차원에서 선구적으로 도입한 나라들도 보수적 경향을 취하던 나라들이었다.

 

이제까지 사회적 약자에게만 제공하던 시혜적 복지에서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복지혜택을 제공하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재정과 관련한 구체적 플랜은 없는 편이다.

 

현재 한국의 복지체제는 자유주의 복지국가의 잔여적 모델에도 못 미친다.

 

무상급식이 뜨거운 의제로 등장한 데는 그래서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컸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슈가 뜨면서, 다른 중요한 의제들을 덮어버린 점이 크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는 국민 70% 수준의 실질적인 양육수당이 그나마 사회적으로 효과가 크고 복지정책의 차원에서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 수준에서는 어느 정당이든 하위 70% 수준의 양육수당과 실질적인 노령연금을 제공하기만 해도, 복지정치의 차원에서 성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방적 사회정책의 가장 중요한 영역은 자녀와 가족이며, 시각을 달리하면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예방적 사회정책은 사회적 공정이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할 뿐 아니라,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미야모토 타로).

 

복지정책은 보수주의 국가의 통치기술뿐 아니라 자유주의적 통치기술의 발전과정에서 필수적인 축이었고 또 지금도 그렇다는 점을 우리는 인식했다.

 

 상당수 비정규직은 연공임금-종신고용 제도를 지키려는 노동자들과 성과만큼만 임금을 주겠다는 기업들 사이의 싸움 과정에서 공중에 던져진 이들이다(정남구).

 

연공형태 임금체계를 개혁하고 그에 따라 직무급을 도입하는 일에 대해 논의하지 않은 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만 거론하는 일은 공허하기 십상이다.

 

개혁 진보세력도 단순히 자유무역의 반대를 외치기보다는 이 이질적인 영역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보상할 까다로운 대책들을 마련하는 데 애써야 할 것이다.

 

중도와 진보 좌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둘은 얼마든지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다. 물론 예리한 문제에서 그들을 다시 갈라질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근본주의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중도는 양쪽으로 공격받기 쉽다. 그러나 현실세계는 이론에서 상정하듯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실을 직시하고, 여건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이상를 저버리지 않은 채, 정책을 제시하고 설득하고 힘있게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도가 필요한 이유다.

 

             2011. 8. 12. 진주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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