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분노하라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8. 3. 08:00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를 읽었다. 저자는 독일에서 출생하였지만 7세에 프랑스로 이주하여 20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하여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다가 1944년 체포된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탈출하고, 이후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되어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초안작성에 참여하고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를 역임하였다.

 

책이 도착하였을 때 부록만 온 줄 알고 본문을 찾았다. 알고 봤더니 책이 해설까지 포함하여 86쪽에 불과하였다. 몇 문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레지스탕스의 개혁안이 명시한 바는 '모든 시민에게, 그들이 노동을 통해 스스로 살길을 확보할 수 없는 어떤 경우에도 생존 방도를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완벽한 구축, 늙고 병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삶을 마칠 수 있게 해주는 퇴직연금제도'였다.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 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힙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자유란 닭장 속의 여유가 제멋대로 누리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다. 1948년 세계 인권 선언이 구체적으로 실천방안까지 명시한 이 권리는 보편적인 것이다. 

 

1935년에 벌어진 스탈린의 대숙청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록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마로서 공산주의에 한 귀는 열어두어 균형을 맞출 필요는 있었다 해도 전체주의라는 이 견딜 수 없는 체제에 맞서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로 다가왔다.

 

사르트르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쳐주었다. "당신은 개인으로서 책임이 있다"고. 이것은 절대자유주의의 메시지였다. 어떤 권력에도, 어떤 신에게도 굴복할 수 없는 인간의 책임. 권력이나 신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이라는 이름을 걸고 참여해야 한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제발 좀 찾아보시오. 그러면 찾아질 것이오"라고.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도에 넘치게 분노'해서는 안 되며, 어쨌든 희망을 가져야 한다......희망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경우에, 격분 탓으로 그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비폭력의 시대, 다양한 문화가 서로 화해하는 시대라고 나는 확신한다. 비폭력이라는 길을 통해 인류는 다음 단계로 건너가야만 한다.

 

폭력은 희망에 등을 돌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폭력보다는 희망을,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한다.

 

21세기를 만들어갈 당신들에게 우리는 애정을 다해 말한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라고.

 

나는 언제나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편에 서 왔다.

 

마음과 정신 양쪽을 다 계발하려면 평소에 시를 암송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 다음에 타인들의 폭력성향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제법 있었지만, 전 세계에서 200만 부가 발행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2011. 8. 3. 진주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