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치열한 법정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7. 10. 23:05

브란트 골드스타인 <치열한 법정>을 읽었다. 미국은 아이티 구데타로 발생한 대량 난민에 대해서는 관타나모에 수용하거나 해상에서 바로 본국으로 송환하는 방식을 취했고, 그들을 정치적 난민이 아니라 경제적 난민으로 취급하여 쿠바의 예와는 다른 정책을 취했다. 이런 미국의 이중적인 난민정책에 대하여 당시 고홍주 예일대 로스쿨 교수가 로스쿨 학생들과 함께 아이티 난민을 위하여 무모하지만 위대한 소송을 제기한다. 이 책은 이에 관한 기록이다.

 

몇 문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아이티인들에게 약속했다. "극소수만 식탁에 앉고 대부분은 바닥에서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대신" 우리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을 것입니다"

 

그래함 보이드가 "불의가 있다면, 소송을 해야 마땅하다"는 어느 운동가의 모토를 인용했다.

 

헤럴드 고는 여섯 살에 소아마비에 걸렸으나, 아버지의 독려에 용기를 얻어 다시 걸을 수가 있게 되었다....헤럴드 고는 자신의 운명이, 연약하고 호리호리한 다리와 명민한 두뇌를 맞바꾸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독하게 공부에 매달렸다.

 

법원에 제시하는 그림이 선명할수록 그만큼 더 유리하다고 고 교수는 덧붙였다.

 

래트너는 동의하면서도, 초점은 그게 아니라고 했다. 자신은 지난 20년 이상, 소장을 접수하고 제소 사실이 보도되도록 함으로써 정치적 의제로 만드는 전략을 연마했다고 한다. 잘못된 정책을 까발리는 스포트라이트로 소송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초점은 그 사람들을 관타나모 밖으로 쫓아낸다는 것이잖아요(리사) / 초점은 망명권을 부여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누구나 망명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변호사를 붙여 주는 거야(고홍주 교수)

 

쉽게 친구를 만들고 만나는 사람마다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 래트너의 장점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집요한 정치관과는 상충되는 듯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상대방과의 좋은 관계가 소송을 편하게 이끈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정부가 표현의 내용에 따라 어떤 표현은 허용하면서 어떤 표현은 허용하지 않는 것, 즉 표현의 내용을 근거로 한 불허에 대하여 연방대법원은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재판장은 말했다. 그는 직관이 현실만큼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직관으로는 아이티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리사는 예일 로스쿨은 우수하게 졸업하고 ACLU 소속 변호사로 근무를 시작했지만, 고 교수가 보기에는 아직도 강성운동가로서의 의식구조를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변호사 업무에 필수적인 전문가적 진지함은 여전히 딴 나라 이야기였다.

 

예일은 이제 리사 도거드가 대단히 오랫동안 끈기있게 자료조사를 하면서 옹호했던 목표, 즉 캠프 난민 전원의 무조건 석방에 초점을 맞추었다.

 

트린갈리 변호사는 사실심리 단계에서는 사실관계가 법률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알고 있었다.....예일의 임무는 가장 극적이면서도 정부의 과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체적 사안을 골라내는 것이었다.

 

블랙먼이 가장 골칫거리였다. 그가 종종 법이 아니라, 근본적인 공평성을 기초로 한 그 자신의 독특한 견해인 형평의 관점에서 결론을 내리더라는 보수주의자의 의견에 마호니도 동조했다.

 

바로 거기가 사법부가 개입해야 할 지점입니다. 행정부가 경계를 넘을 때 사법부는 방어의 최후선을 담당합니다(존슨 판사).

 

정치판에서는, 먼저 나서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과 법원의 판결을 따르겠다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지요.

 

모두들 스칼리아가 자신의 평이한 언어 원칙을 무시했다고 확신했다. "어떠한 일관된 법률적 철학이 존재한다고 믿기기 힘들어요."

 

고 교수의 세계관으로는, 예일 로스쿨처럼 우수한 학교의 재능 있는 학생들은 사회에서 가장 고통 받는 이들에게 봉사할 의무가 있었다.

 

법이 어떻게 정의를 쟁취하는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2011. 7. 10. 진주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