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인민의 탄생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12. 24. 13:11

송호근 <인민의 탄생>을 읽었다. 저자는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다. 이 책은 조선의 백성이 현대의 시민으로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를 탐구하였다. 책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894년을 전후하여 생겨나기 시작한 자발적 결사체는 조선의 지배 구조와 지배 이념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자율적 조직이고, 사적 이해 관심과는 무관하게 국가적 차원의 공익과 명분에 기여하려는 목적을 향해 진군했다.

 

군주는 인민을 하늘로 여기고 인민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이이)

 

조선의 통치 계급이 애써 외면했던 이 새로운 인민의 맹아는 18, 19세기에 걸쳐 세 가지 통로를 통해 형성되고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 민란과 농민전쟁, 서민 문예가 그것이다.

 

문해인민, 언문을 읽고 쓸 줄 아는 인민, 이들이 이 연구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변동의 주체이자 추동력이다......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설득할 수 있는 기제, 타인의 낯선 생각을 접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가 생긴가는 사실은 사회 변혁에서 매우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문해인민은 그런 사람들이다.

 

17세기 후반 이후 인구 증가, 농업 생산력의 발달, 신분제도의 동요, 유통 경제의 발전과 함께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왔던 서민층이 19새기 후반기에 '두 개의 변동 단계'를 거치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서민층의 신분제적 강제가 약화되고 신분적 이질성이 줄어들면서 우리가 오늘날 민중이라 부르는 피통치 집단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던 것이 하나이고(형성단계), 다른 하나는 민중적 성격을 띤 이 인구 집단이 정치적, 경제적 엘리트층과 지식인 집단이 주도했던 여러 형태의 체제 변혁 시도에 의해 분화, 동원되는 단계이다(분화 동원 단계).

 

오늘날 과거에 대해 사람들이 품고 있는 관념의 구조, 즉 현존하는 과거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과거의 현재', 즉 당시 사람들이 그 당시의 현실에 대하여 품었던 생각과 행동 양식, 희망과 절망, 미래 포부, 처지 등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우선 물어야 한다.

 

표음문자인 훈민정음이 창제되자 인민은 감정, 정서, 비판 의식 등 내면의 소리를 문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표현된 소리 즉 언문 문서가 다시 인민에게 새로운 의식 세계를 요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지배 계급의 전유물이었던 한문적 세계관에 대하여 언문적 세계관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이 주어졌다는 것이야말로 '인민의 탄생'의 전제 조건이었다.

 

중세의 공동 문어가 민족어로 대체되는 과정을 근대화라고 한다면, 민족어의 사용 밀도와 문해인민층의 규모는 근대화의 양식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고 할 것이다.

 

집권 사대부들이 신유학의 사상적 혁신에 몰두하는 동안, 18세기 이래로 진행된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힘입어 전문 지식을 갖춘 중인 집단, 처사로 불리는 유랑 지식인들, 그리고 향촌에 거주하면서 평민과 다른없는 생활을 했던 몰락 유사들이 저변에서 지식의 유형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한자는 사대부의 문자였고, 언문은 인민의 문자였다.

 

母語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문자의 유무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 단적으로 말한다면 세계관 형성의 유무, 나아가 그 공동체의 역사의 유무를 결정짓는다.

 

훈민정음의 창제와 사용은 역사의 객체이면서 통치 권력의 대상인 인민을 역사의 주체로 변조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이자 인민을 통치 권력의 중앙 무대로 진입케하는 수단이었다.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다.

 

문자화된 인식이 시간과 섞이면서 역사가 된다. 역사에 흔적을 남길 수 없었던 인민이 문자 해독 능력을 갖추자 역사적 존재로 전환하는 것이다. 문해인민의 탄생은 그런 의미를 갖는다.

 

조선의 선비를 사대부라고 부르는 것은 물러나면 사요, 나아가면 대부였고, 수기의 사와 치인의 대부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종합체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사는 대부의 전제이며, 대부는 사의 궁극적 목표였다. 벼슬로 나아가기 위해 글을 썼으며, 수기정심을 위해 고문 경전을 외우고 문장을 지었다. 그러므로 선비는 문에 삶을 바치는 사람이었다.

 

성리학이라는 거록한 천개로 둘러싸인 조선 사회의 향촌 지배와 종교, 교육을 중심축으로 구축된 통치 질서에서 언문은 도대체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가가 이 연구가 규명하고자 하는 질문이다.

 

공론장은 공론을 변한 사적 영역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해관심을 관철하기 위해 이성의 공적 사용을 활용해 공적 권력에 대항하거나 논쟁을 요구하는 행위로부터 발생한다.

 

명확한 개념 규정을 내리기를 다소 주저하는 푸코는 담론을 말하고 있는 대상을 체계적으로 형성시키는 실천으로 간주했다.

 

천주교 신자들이 명시적 저항 의식을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신앙 속에는 저항의 잠재적 기능들이 잠복해 있었다. 다시 말해 천주교의 잠재적 기능은 저항적이었고 체제 전복적이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천주교는 유교의 수직적 위계를 수평적 우애로 바꾸고, 출신 성분에 의해 결정되는 운명론적 인간관을 신분에 구속되지 않는 보편적 인간관으로 환치했다.

 

천주교의 담론을 확산시키는 기제는 무엇이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한글 번역 성서였고, 이 한글 번역 성서가 유통되는 기제로 명도회와 같은 신심회, 신자들의 혈연 및 지연 네트워크, 그리고 교우촌을 들 수 있다.

 

앤더슨은 18세기 유럽에서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가 탄생하는 데에 소설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독서 대중의 입장에서 설파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인의 발견이 중세의 종언을 재촉하고 근대의 여명을 지피는 가장 중대한 변화라고 한다면, 문예적 평민 담론장의 형성이야말로 그 중심에 놓여야 할 사안이다.

 

유럽 중세 인민들의 심성과 사유 방식을 연구한 마르크 블로그는 사물과 현상에 대한 객관적 관찰 능력이 없는 인민들은 그것에 대한 해석에 주로 매달렸으며, 그 해석을 주관한 것은 교회와 성당의 성직자들이었다고 한다.

 

권위는 현실 세계에서 사대부, 조정, 관아의 언어와 행동에 힘을 부여하는 원천이었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요건을 몇 가지로 요약한다. 사적 이해를 넘어서 공적 관심을 가진 개인들, 즉 공중의 형성, 공중들의 자발적 모임들 또는 결사체, 정보와 뉴스의 유통, 유통 매체들의 존재가 그것이다.

 

조선은 시장을 末利 추구의 타락한 장소로 간주하여 불온시했다는 점에서 중국, 일본과는 구분되는 특이한 국가였다.

 

지배구조에 균열이 발생하는 것은 두 가지 경우다. (1) 지배 세력 간 이해 갈등과 충돌에 의해 지배층이 분열하는 경우 (2) 지배 구조를 유지 지탱하는 제도가 사회 경제적 조건의 변화를 수용할 수 없는 경우가 그것이다. 두개 중 하나의 요인만이 진행되었을 때에는 지배 구조의 변화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두 가지가 중첩되었을 경우 내부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결국 체제 붕괴에 이르고야 만다.

 

조선의 지배 구조의 핵심 동력은 지식 권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식-권력의 일체성이었다. 지식-권력의 선순환 구조가 조선 사회를 500년 유지 존속기킨 가장 중요한 원리였다......그러나 양자가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조선은 질적으로 새로운 시간대를 맞아야 했다......지식이 권력을 창출하지 못하는 상황, 권력이 지식의 견제를 받지 않게 된 상황, 또는 지식인과 권력자가 분리되는 상황이 전개되자 조선 사회를 유지했던 가장 중요한 골격은 지탱될 수 없었다......19세기 초반 순조 연간에 지식-권력의 분리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던 이유는 바로 노론 세력에 의해 장악된 세도 정치때문이다.....조선의 고유한 통치원리, 지식과 권력의 선순환 과정을 중단시킨 그 우연한 권력의 독점 속에 새로운 시대의 씨앗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2011. 12. 24. 진주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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