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고 한기택 판사 5주년 추도식에 다녀와서

자작나무의숲 2010. 7. 25. 13:45

1.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고 한기택 판사 5주년 추도식에 다녀왔다.

2010년 7월 24일 오전 10시 KTX를 타고 부산역에서 서울역까지 이동한 후 오후 2시 45분쯤 서울중앙법원 정곡빌딩 앞에서 '한기택 판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마련한 관광버스를 타고 오후 4시경 경기도 안성시 유무상통 마을에 있는 하늘문에 도착하였다. 관광버스를 타고 승용차를 타고 30여 명이 추도식 1부에 참석하였다.

추도식은 고인의 종교의식에 따라 성경을 함께 읽고 김종훈 변호사가 추도사를 읽은 다음 참가자들이 모두 고인에게 절을 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김종훈 변호사는 "우리의 스승이자 벗인 한기택 판사가 우리 곁을 떠난 지 5년이 되었습니다"로 시작된 추도사에서 "나는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저는 내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남들이 죽었다고 보건 말건, 진정한 판사로서의 나의 삶이 시작될 것으로 믿습니다. 내가 목숨 걸고 악착같이 붙들어야 할 것은 '그 무엇'이 아니라, 법정에 있고, 기록에 있는 다른 무엇이라 생각합니다"는 고인의 말을 인용하였다.

김종훈 변호사는 "고등학교 때에 가졌던 꿈은 절대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화 내지 않는 사람, 멋있을 것 같아서요"라는 고인의 말을 의식해서인지 "화를 내지 말아야겠지만, 갈수록 화를 낼만한 일이 늘어가고 화를 같이 풀 친구가 줄어드는 것이 아쉽다"는 말을 추도사에 덧붙였다.

 

  나는 납골당을 둘러보면서 고 한기택 판사의 옆 자리에 '예약'이라는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의미일까? 누군가 납골당을 예약해두었다는 의미일까? 가족이 중병이 들어서 예약해두었다는 말인가? 아니 우리는 어차피 죽는 것이 '예약'되어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하였다.

 

2. 현재의 사람들이 기억해야 역사가 된다.

  오후 4시 40분경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 서초동으로 이동하여 삼겸살집에서 추도식에 참석했던 사람이 저녁식사를 겸하여 추도식 2부 행사를 하였다. 빠질 수 없는 것이 폭탄주다. 맥주 7에 소주 3을 타서 소폭을 제조하였다. 연장자와 연소자가 짝을 이루어 마시는 방식이었고 돌아가며 폭탄사 한마디 하였다. 나는 한기택 판사와 그 아들의 차이점을 3가지 정도 열거한 다음('고 한기택 판사는 첫사랑과 결혼하였고, 그 아들은 첫사랑과 헤어졌다' 등등)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였다.

'과거의 일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사람들이 기억할 때 그것은 역사가 된다'

  돌아가신 지 5주년이 지나도 40여 명을 한 자리에 모으는 한기택 판사의 힘은 무엇일까? (자세한 내용은 도서출판 궁리에서 출판한 <판사 한기택>을 읽고 여러분이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여럿이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하는 사람이 꼭 있는 법이다. 또다시 노래방으로 옮겨서 장년방, 청년방으로 나누어 놀았다. 유난히 많은 술을 마셨다. 마치 술을 많이 마시면 한기택 판사가 부활한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3. 의미 없는 소멸이 두려운 것이다.

  오후 10시 반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한 다음 집에 돌아오니 오전 2시였다. 오전 9시에 집을 나서 오전 2시에 집에 도착하였으니 몸이 매우 피곤하였지만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트위터에 들어가 봤더니 트위터에 자살을 예고한 사람이 있었다는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다음과 같은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지금 자살을 생각하시고 계신분이 있다면 한 번만 더 생각해주십시오 자살자살자살 이렇게 10번만 외치면 어느 순간 살자살자살자로 들릴 것입니다. 실패가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은 실패하면 사는 것입니다. 님이 떠나고 나면 잡지못한 미안함에 며칠을 울어야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보고 싶어 또 울지도 모릅니다. 자살은 남는 이에게 감당할 수 없는 상처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한 해외여행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분의 추도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날, 트위터에 자살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에게 글을 남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고로 죽건 자살로 죽건 인간은 소멸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자기 삶이 세상에 의해 주어졌으므로 삶의 의미 또한 세상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에게 두려운 것은 소멸이 아니라 '의미 없는' 소멸이 아닐까?(안상헌 '생산적 글 읽기 50'에서 인용)

 

                   2010. 7. 25.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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