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유엔묘지에서 이삭의 집까지

자작나무의숲 2010. 9. 11. 14:42

부산법원 봉사단체 <정겨운 세상 만들기>에서 유엔기념공원과 이삭의 집을 다녀왔다.

당초 계획은 부산 남구 대연동에 있는 유엔기념공원에 가서 비석을 닦고, 잡초를 뽑고, 묘역을 청소한 뒤

참배를 하는 것이었으나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 때문에 도저히 봉사활동을 할 수 없었다. 추모관에서 평화의 수호자라는 동영상을 보고, 자원봉사자 최규식 선생의 해설을 듣고, 상징구역에서 헌화를 하고 참배를 하였으며, 최선생의 안내로 묘역을 들러보면서 1시간 30분을 기다렸으나 비는 그칠 줄을 몰랐고 옷만 비에 흠뻑 젖었다. 결국 봉사활동은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유엔기념공원은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이름으로 참전하였다가 전사한 용사들을 기리기 위하여 1951. 1. 18. 묘지가 조성된 이래 1955. 12. 15. 유엔총회에서 묘지를 유엔이 관리하기로 결의한 바 있으며, 1974. 2. 16. 관리업무가 유엔에서, 11개국으로 구성된 재한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로 위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엔기념공원 안에 추모관, 기념관, 묘역, 위령탑이 들어서 있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유엔군은 4만 여명인데, 유엔묘지에 묻혀 있는 용사는 현재 11개국 2300여 명 정도 된다. 특이한 것은 한국전쟁 기간 전사한 군인의 숫자는 한국군 14만여 명, 유엔군 4만여 명 합계 18만여 명인데 비하여, 민간인 사망자는 37만여 명으로 군인 사망자의 2배가 넘는다는 점이다.

 

비속을 뚫고 묘역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17세의 나이로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호주 출신 병사 도은트를 비롯한 16개국 출신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무엇을 위하여 이 땅에 왔을까?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좋은 전쟁이란 낭만적 생각에 불과하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깨달음을 몰랐을까?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룬다면 완전한 통일이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을까? 묘역을 돌면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단어는 <평화>였다.

 

11시 반 쯤 비속을 뚫고 부산 수영구 광안4동에 있는 이삭의 집으로 이동하였다. 윤인태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는 이동 중에 집에 들러 추석선물을 가져왔다. 주영숙 원장이 요리한 닭고기 칼국수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삭의 집 장oo군이 초등학교 선배들한테 집단폭행을 당하여 비싼 의료기기가 파손되었다고 한다. 장oo군이 가해자를 지목하였음에도 가해학생 담임선생이 가해자를 감싸고 돌아 진상규명이 여의치 않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하느님께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회원들이 모은 약간의 돈을 주원장께 전달하고 오후 2시쯤 집에 돌아오니 거짓말 같이 비는 그쳤고 하늘은 가을하늘이 그러하듯이 맑고 푸르렀다.

 

평화는 수단이자 목적이다. 전쟁이 없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평화를 달성할 수는 없다. 이삭의 집 같은 생활공동체가 여느 가정과 똑같아지고, 장애아동이나 시설아동이라 하여 차별을 받지 않는 세상, 바로 그런 세상이 진정한 평화의 모습이 아닐까? 어쩌면 유엔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한 용사들이나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삭의 집을 운영하는 주원장이나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장대비가 그치고 맑게 개인 가을 하늘을 쳐다 보면서 아!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본다.

 

                                 2010. 9. 11.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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