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기타)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0. 1. 6. 19:27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읽었다. 2003년에 초판이 발행되고 2009년이 개정판이 발행되었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나는 사람이나 개의 몸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부분은 발바닥의 굳은 살이라고 생각한다.

 

죽기를 각오한 자는 마침내 죽을 것이고, 그가 죽는 과정에서 또한 남을 죽일 것이다. 겁 많은 사람들이 이 하찮은 삶을 그나마 애지중지하면서 조심조심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는 살고 싶다. 자동차가 이처럼 늘어났으니 되도록이면 거리에 나가지 않아야 겠다.

 

길은 명사라기보다는 동사에 가깝다.

 

나무나 풀은 본래 주인이 따로 없고, 바라보는 사람이 주인이다.

 

나는 모든 전쟁 포로의 근접사진을 TV로 공개해야 한다고 믿는다. 제네바협정은 추악한 위선이다.

 

인간은 전면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왜 스스로 높은 귀족의 정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쓰레기통 근처를 얼씬거리면서 쌍소리를 해대는가......귀족 정신을 모조리 쳐부수어야 서민의 낙원이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가 귀족의 명예심을 잃을 때 서민의 지옥은 시작된다. '서민'은 귀족의 반대말은 아니다.

 

치욕을 도려내버린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 언어화된 이념일 것이고, 역사는 치욕과 더불어 비로소 온전할 터이다.

 

인간에 대한 가장 큰 죄악은 인간에 대한 둔감함이라고, 그 역겨운 짬뽕 국물이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말로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이처럼 어려워야 하는가

 

다섯 명이나 여섯 명이 한 조가 되어서 호스를 끌고 불 속으로 들어간다. 연결이 인간에게 없던 힘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자작나무 잎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부낀다. 나무의 모든 잎들이 제가끔 햇빛에 반짝이며 흔들린다. 이 세상의 모든 나무들 중에서 자작나무가 가장 빛나는 나무다. 자작나무는 늘 빛 속에 서 있다.

 

북에는 개인의 밀실이 없고 남에는 공동의 광장이 없다(최인훈의 <광장> 중에서)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었고, 그러나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오프사이드(귄터 그라스 월드컵 전야제 축시)......오프사이드는 무인지경을 공격하는 행위를 벌한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는 근원적 문제보다 존중과 타협이 중요하다.

 

<칼의 노래>......희망 없이도 잘 사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거다. 희망이나 전망이 없어도 살아야 되는 게 삶이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기도 하다......오히려 헛된 희망이 인간을 타락시킨다. 인간은 헛된 희망 때문에 무지몽매해진다. 결정적으로 인간이 무지몽매해지는 것은 어설픈 희망 때문이다.

 

노는 거는 그 자리에 있는 세상하고 단둘이 노는 거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나는 편애할 때 편안하다.

 

김훈의 소설에 흠뻑 빠진 사람들은 김훈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그의 산문집 <자전거여행>과 중복되는 면도 있지만, 곱씹어 볼 만한 내용이 많다.

 

              2010. 1. 6.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