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기타)

김훤주의 '습지와 인간'을 읽었다.

자작나무의숲 2008. 10. 26. 21:33

김훤주의 '습지와 인간'을 읽었다. 지은이는 경남도민일보 기자로서 현재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을 맡고 있다. 고려대학교에 다닐 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하였다. 이 책에는 2008년 10월 경상남도에서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리는 것을 계기로 지은이가 환경운동가와 함께 경남 일대에 있는 습지를 둘러보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습지 기행 중간중간에 고장의 역사가 소개되고 문명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이 드러난다. 그는 우리말과 사투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데 이 책에서 그의 모국어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 책에서 습지를 내륙습지, 연안습지, 산지습지로 나누고 있다. 내륙습지로는 우리가 '우포늪'으로 알고 있는 소벌을 비롯하여 주남저수지 등이, 연안습지로는 남해의 갯벌들, 산지습지로는 재약산 산들늪이 소개되고 있다. 특히 남명 조식 선생에 대한 비판 대목에서는 삶에 대한 그의 엄격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책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습지를 벗어나 언덕배기에 살기 시작한 때는 농경사회에 들어선 다음입니다. 지금 사람들 생각과 달리 얼마 안 되는 기간이고, 전에는 주로 물가에서 살았습니다.

 

자연이 갖고 있는 속성은 그대로 두고 그것을 활용해야 합니다. 억지로, 강제로 하면 안 됩니다. 

 

에너지는 발산되어야 합니다. 이런 발산은 가장 약한 부분을 비집고 나옴으로써 이뤄집니다.

 

대부분 습지가 그렇듯 소벌도 범람의 산물입니다. 큰 물이 질 때 낙동강이 넘쳐흐르면서 뒤쪽에 뻘과 물이 고였습니다.

 

 


남명은 1558년 음력 4월 지리산을 둘러보고 遊頭流錄을 남겼습니다......부처님을 모시는 청정 도량에서, 그것도 불교에서 엄금하는 술을 마시고 기생까지 끼고서 풍악을 즐기다니요. 이처럼 남명은 지배계급 소속이었고 특권층이었습니다......하지만 자기들의 이 놀음이 바로 백성들 부역이나 세금을 바탕삼고 있음을 뚜렷하게 깨닫는 데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봉암갯벌은 생명을 되찾았습니다. 도심에서 갯벌의 생명력을 되찾은 소중한 사례로 기록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마산 토박이인 우무석 시인은 옛사람은 산에가면 遊山이라고 하고 물에서 노닐면 觀水, 觀海라 했다고 일러줬습니다......그러면서 觀은 見과 달리 눈여겨 바라본다는 뜻이라 덧붙였습니다.

 

람사르 협약도 1998년 산호세에서 열린 제7차 총회에서 가입한 모든 당사국에게 습지목록을 조사, 작성해 제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지율스님은 대법원 결정 직후 "차라리 제가 틀렸고 대법원이 옳아서 제발 천성산이무사하기를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람사르 협약에서 습지란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임시적이든 영구적이든, 물이 흐르든 흐르지 않든, 짠물이든 민물이든 아니면 섞인 물이든, 늪 소택지 이탄지 또는 물이 고여 있는 지역'이라 규정돼 있습니다.

 

2005년 11월 아프리카 우간다 캄팔라에서 열린 '제9차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는 자연 습지가 아니라 인간이 개발해 농사를 짓기까지 하는 땅이 습지 목록에 오른 처음 사례이며...가을걷이를 한 다음 볏짚과 쌀겨를 뿌리고 물을 채우는 겨울철 무논 농법은 한 번 시작한 사람이라면 쉽게 그만두지 못할 정도로 효과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논농사의 친환경적 변화는 한미FTA의 시장제국주의 침탈을 벗어나는 대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환경과 생태계를 보존하는 한편 논의 공익 기능을 다하게 하는 유기농업 실천을 이유로 일정한 금액을 보상해주는 '환경 직불제'를 채택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지은이가 습지를 사랑하는 데는 결국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야만 온전한 삶이 유지된다는 인간관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많을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아니 뇌출혈로 투병중인 아내에게 바친다는 이 책이 세상사람들에게 덜 읽히더라도 그의 아내가 기적적으로 나아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2008. 10. 26. 부산에서 자작나무 올림

 

(그뒤 대표적인 연안습지인 순천만을 다녀왔다. 남녀노소의 사람들로 붐볐다. 열차와 탐조선은 예약이 밀려 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습지엔 푸른 갈대가 싱싱함을 뿜어 내고 있었고, 갯벌 바닥에는 방게, 농게 같은 생물이 나뒹굴고 있었다. 잘 닦인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어 좋았고, 걷다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2.5km 떨어진 용산전망대에서 이곳 저곳을 본다면, 산도 바다도 습지도 석양도 볼 수 있겠으나, 애들 때문에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다. 쉼터에서 먹은 팥빙수는 유기농식품이라 그런지 매우 맛있었다. 생태정원을 만들고 있었다. 순천만을 들른 다음 순천에 있는 대원식당에 가서 한정식을 먹거나 하동읍으로 넘어가 여여식당에서 재첩백반을 먹는다면 여행은 더욱 즐거우리라. 2009년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