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황동규의 산문집 삶의 향기 몇 점을 읽다.

자작나무의숲 2008. 11. 19. 19:50

황동규님의 산문집 삶의 향기 몇 점을 읽었다. 황동규님은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아들인데, 이름과 관련하여 재미난 일화가 있다. 소설가 황순원과 시인 박목월은 생전에 친구였는데 자식을 낳으면 이름이 같이 짓자고 약속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황순원님의 아들이 황동규 전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이고, 박목월님의 아들이 박동규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이다. 이 책은 시인인 저자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틈틈이 써온 산문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나는 얼떨결에 인간의 선의가 받아들여지는 것이 희극이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비극이라고 대답했다.

 

헤겔은 인간에게 두 가지 절대 명령이 주어졌을 때 더 중요한 하나를 택하고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비극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비극의 원형이라고 일컫는 호머의 '일리아드'의 주인공 아킬레스에게 보통 사람으로 오래 잘사는 것과 영광스럽게 짧게 사는 것 가운데 어는 것을 택하겠느냐고 신이 물었을 때 그는 주저없이 후자를 택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인류의 모든 신화가 문화의 차이에 관계없이, 문명과 야만에 관계없이, 구조적으로 같다고 주장했고 그것이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의 것을 소비하거나 소유하는 것은 부정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에게 미리 주어지는 가난 같은 나쁜 조건을 극복하는 것이 아예 그 나쁜 조건이 없었던 경우보다 윤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극복하는 동안 타인의 존재를 배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배우기 때문이다.

 

선사 임제의 저 유명한 가르침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는 사실 특별한 주문이 아닐지 모른다. 예수도 자기를 따르려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햐튼 지식을 통한 알음알이가 아닌 오랜 번민과 수행 끝에 터득한 득도야말로 禪의 핵심인 것이다.

 

니체에 의하면 모든 생명체는 태어날 때부터 욕망을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하지 않고 자기 욕망대로 이상적으로 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가까이 지낸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할 때, 혹시 그가 변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변하지 않았는가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김수영은 시 쓰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시에 뛰어든 인간이었다. 그의 말을 빈다면 시는 '불가능의 추구'였던 것이다.

 

그냥 여행만 한다면 그건 이미 여행이 아니다. 벗어날 삶이 있어야 여행인 것이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너도 나도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것을 획득하려 정신없이 뛰고 있는 지금 이 세상에서 최대한의 노력으로 최소한의 것을 얻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문학의 바보스러움이 지닌 매력 때문이라고 대답하는게 정직할 것이다.

 

내 시의 요체를 찾는다면 그 무엇보다도 계속적인 변화일 터이지만 때로는 되돌아섬도 변화를 일으킨다.

 

좋은 시란 인간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는 시가 아니겠어요?

 

내 사랑도 언젠가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시의 핵심이 노래라는 사실을 김수영처럼 절실히 보여준 예도 없습니다. 한편 김수영 선생은 한국시에서 세계를 구조적으로 보는 방법을 실천한 최초의 시인입니다.

 

요즘 젊은 이들의 시에는 너무 꿈이 없어요 꿈이 무엇이냐? 꿈의 핵심은 증오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이해관계를 떠나는 게 꿈이죠.

 

여행과 음악이 취미라는 저자의 고백도 들을 수 있고, 덤으로 그가 지은 시 몇 편을 읽을 수도 있다. 많은 문학가를 만날 수도 있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