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황대권의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자작나무의숲 2008. 11. 23. 10:42

황대권님의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3년간 복역하였다. 감옥생활중 야생초를 키운 이야기를 쓴 '야생초 편지'가 많은 이들을 공감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이 책에는 농부로서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공동체세상을 꿈꾸며 생명평화운동에 매진하는 저자의 생각이 오롯이 들어 있다. 감동적으로 읽은 부분은 다음과 같다.

 

형제를 변화시키려 하지 말라.

기다려라.

기다리는 중에 내가 변화된다.

그러면 변화된 나로 인하여

형제가 변화될 것이다.

악은 실체가 아니다.

선의 부족 상태일 뿐.

그러니 선을 북돋우라.

악은 몰아댈수록 야수처럼 자라지만

선은 식물처럼 기다림 속에 자라난다(초대 기독교 수도 공동체 규칙서)

 

야생초 편지에 나오는 '평화란 남이 내 뜻대로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그만둘 때' 라는 구절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켜 여기저기 인용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괜스레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산은 자신의 몸 안에 깃들여 사는 모든 생명 사이의 복잡미묘한 관계들을 잘 알고 있지만 얄팍한 지식에 기대어 함부로 날뛰는 인간만이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정 행복이라고 느끼는 것들의 대부분은 돈으로 살 수 없거나 복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자연 속에 직선은 없다. 있다 해도 그것은 곡선의 일부이거나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논리가 아니라 자연을 슬쩍 끼워놓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너와 나 사이에 자연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의 갈등은 조정될 여지가 생기고 또 자연으로 해서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권력과 자본의 힘이 개인의 실천력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선택하는 '가운뎃길'이 과연 성공할 수 있는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성공의 비결은 단 하나 '깨어있음'이다. 깨어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가운뎃길은 적당한 타협이 될 수도 있고, 中道가 될 수도 있다......현실 속에 깨어 있는 상태를 '중도'라고 한다......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어찌 할지 몰라 고뇌하는 것과 다른 차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일종의 '수행'이라 할 수 있다......이제부터는 '고뇌하는 지식인'으로부터 벗어나 '수행하는 지식인'으로 나아가야 한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도.....시설투자에 집중되어 있을 뿐, 어디에도 사람에 대한 투자는 보이지 않는다......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농촌을 이끌어갈 사람을 모으고 양성하는 데 투자하자는 말이다. 지금 책정한 예산의 절반만 들여도 이것은 충분하다.

 

미국의 농부시인 웬델 베리는 지구 생태계를 안정시키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지역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잡초론의 위험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집권자의 의도가 아무리 선하고 순수하다 할지라도 국민의 성향을 하나의 잣대로 구분하여 어느 한쪽을 제거해야 한다고 선포하게 되면 그 사회는 단세포적인 획일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다......21세기를 생태주의 시대라고 규정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생태주의 시대를 특정짓는 가장 소중한 가치는 다양성이다......굳이 잡초라는 말을 쓴다면 잡초는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일 뿐이다.

 

독점관계가 형성되면 '보이지 않는 손'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폭력 평화주의로 유명한 마하트마 간디는 국민의 지도자로서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했다.

 

전업농은 이렇듯 힘들고 게다가 국민 대부분이 도시에 기반을 두고 사는 마당에 부분적으로나마 농업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바로 도시농업이다.

 

20세기의 성자라 일컬어지는 마하트마 간디는 일찍이 '대량생산'이야말로 현대사회의 모든 부조리와 모순의 원천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만일 사람들이 '작은 것'을 좋아하고 '작은 것'을 추구한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간단하게 해결될 텐데......이 시대의 진보는 작은 것들 속에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말하자면 대량생산 체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이자 대안인 셈이다.

 

나는 지금부터 농민들이 주식을 위한 논과 밭의 면적을 확 줄여버리고 그 자리에 다양한 유용 야생초와 유실수를 심는 것이 농민 자신을 위해서나 생태계를 위해서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문제였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념과 정책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유리알같이 투명하지 않으면 정치는 권력놀음이 되고 만다.

 

인간 사회에 진보가 있다면 영성의 진보가 있을 뿐이다.

 

13년간 옥중생활을 하면서 정제된 언어로 생명평화운동의 체험과 생각을 드러 내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다. 하루만에 다 읽어버린 것이 저자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2006년에 펴냈다는 책이 아직도  1판 1쇄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2008. 11. 23. 부산에서 자작나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