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이상묵의 '0.1그램의 희망'을 읽었다.

자작나무의숲 2008. 11. 1. 09:23

이상묵, 강인식의 '0.1그램의 희망'을 읽었다. 이상묵은 현재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는 서울대 자연과학대를 졸업하고 미국 MIT-우즈홀 공동박사학위 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해양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지냈다.

것이 전부였다면 이 책은 크게 감동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06년 미국 야외지질조사를 하면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해 C4 척추 손상을 입었고 그 때문에 목 아랫부분을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가 되었지만('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를 쓴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 수석전공의 이승복 선생은 C7 - C8 척추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이두박근과 같은 근육이나 손가락을 쓸 수가 있었고, 이를 통하여 글씨를 쓰거나 식사를 할 정도가 되었다), 재활 끝에 6개월만에 강단에 복귀하면서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 소식을 '서울대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교수, 강단에 선 그는 슈퍼맨이었다'는 제목으로 세상에 알린 사람이 공동저자인 조선일보 강인식 기자다.

 

'삶의 매순간은 신성하다' '횡경막만을 이용해서라도 정상인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것만 보아도 나는 큰 행운아다'라고 말하는 이상묵 교수의 선언에 절로 고개가 숙여짐과 동시에 삶에 철저하지 못한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이상묵 교수의 인생에 등장하는 이혜정님(차량 전복 사고에서 사망한 서울대 학부생), 이건우 교수님(상금 1억 원을 이상묵 교수에 기부함으로써 이상묵 교수의 문제를 공론화한 서울대 교수), 그리고 숀 솔로몬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 없었더라면 이상묵 교수의 삶은 훨씬 건조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대학교수는 가르치는 것 못지않게 해당 학문 분야의 발전을 이룩해야 할 막중한 사명을 띠고 있다.

 

눈 앞에 뭔가 보였을 때 벌떡 일어나 앉는 것, 호기심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것, 기어가는 벌레에 반응하고, 등 밑의 작은 돌을 피해 몸을 뒤척이는 것, 그렇게 나의 감각이 다른 사물과 교통하는 그 모든 것......그 때는 몰랐다. 그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꿈에도 몰랐다. 그날 밤이 잠을 자며 몸을 뒤척일 수 있는 마지막 밤이 되리라는 사실을......

 

30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꾸는 것, 이것은 생존을 위해 내가 죽을 때까지 기억해야 할 일이다......위기나 기회의 순간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백인 학생들에게 현재 전공하고 있는 과목을 택했는지 물어보면, 그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호기심 때문에, 자연에서 지내는 것이 좋아서, 재미있어서 등이 그 이유였다. 이 때 처음으로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차이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선진국은 많은 부분에서 사회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어 급작스럽게 벼락출세를 한다거나 돈벼락을 맞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충실하고 거기에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유회사가 원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Problem Solver'들이다......대학은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나머지는 사회가 가르쳐야 한다.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대학도 있다. 산업대학이 그런 목적에 부합하는 대학이다. 

 

공부는 지능지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공부에 대한 흥미와 열의가 결국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논문 수가 많다고 해서 은퇴할 때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세상은 한두 가지라도 그 사람이 가져온 새로운 변화로 그 사람을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과학 전략은 중간 진입 전략이야......우리나라는 외국이 하고 있는 것을 자세히 지켜보다가 이거 돈 되겠다 싶으면 외국이 100을 투자할 때 한꺼번에 200, 300을 투자해서 단시일 내에 그 분야의 대표 선도 주자가 되는 거야.

 

접근성, 그것은 모든 장애인에게 꿈같은 단어다.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접근성'을 위해 싸우는가.....접근성을 갖는다는 것은 장애인이 직업 활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며, 그것으 곧 자립을 의미한다.

 

재활이 뭐죠? 원래 직업으로 돌아가는 거죠

또 있는데 뭔지 아세요?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그 돈(이건우 교수가 기부한 돈)을 나를 위해서만 쓸 수는 없었다......거기서 남은 돈과 내 개인돈을 보태 5000만 원 규모의 '이혜정 장학금'을 조성했다......내 힘으로 이 장학금을 키우는 것이 또 다른 삶의 목표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묘한 희망이 느껴졌다......몸은 멀쩡한데 머리만 다쳤다면 그게 훨씬 더 불행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장애를 받아들였다.

 

이건우 교수님은 나에게 구체적인 길을 열어주었다. 그가 나에게 1억 원을 기부하면서 학교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자연대에서는 '공대 교수도 저렇게 하는데 우리도 나서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오는 데 걸림돌이 되었던 여러 가지 행정적인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선생님은 그냥 존재하시는 것만으로 주변에 메세지를 전하고 계십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즈의 전설적인 타자 루게릭이었다. 루 게릭이라는 병의 이름을 낳은 불치병의 대명사이기도 한 선수다......다치기 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었는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내가 척추 손상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도덕적인 메시지가 아니다. 단지 나처럼 이런 기구를 사용하면 다시 세상과 쉽게 소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 것뿐이다.

 

우리 인간은 대부분 이 같은 모른다는 상태를 매우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아가 그들은 비어 있는 상태보다도 설령 틀렸더라도 뭔가로 채워져 있는 상태를 더욱 선호하는 것 같다.

 

니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종교는 우리가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그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러셀은 과학과 신학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 놓인 그 넓은 회색지대가 철학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재활은 완전히 낫는 게 아니라, 자기 직업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재활의 참뜻을 살려가고 있는 것이다.

 

'하늘은 모든 것을 가져가시고 희망이라는 단 하나를 남겨주셨습니다' '열심히 살라느니, 용기를 잃지 말라느니 하는 도덕적 메세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장애인들을 이 세상 속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보다 현실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이상묵 교수의 선언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이다. 일독을 권한다.

 

           2008. 11. 1.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