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를 읽었다. 장하준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아 1990년 이래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세계적인 경제학자이다. 경제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고려대학교 장하성 교수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가 결코 개발도상국의 이념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게 유해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의 경제 기적을 시장 인센티브와 국가 관리의 교묘하고도 실용적인 조합이 빚어낸 결과로 분석하는 데서 드러나듯 경제발전은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아니 되고 보이는 손인 국가가 적절하게 시장에 개입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신념을 보여준다. 특히 영국, 미국을 포함한 오늘날의 부자 나라들은 자국 산업의 보호를 위해 보호 관세와 보조금을 사용하고, 외국인 투자자를 차별했다는 역사적 경험을 들어 신자유주의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인상 깊은 대목은 다음과 같다.
1841년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 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 차 버리는 것은 아주 흔히 쓰는 영리한 방책'이라고 꼬집었다.
자유 시장과 민주주의는 타고난 짝이 아니며, 국민들이 게을러서 나라가 가난한 것이 아니라 나라가 가난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게으른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득 불평등은 증대한 반면, 성장은 사실상 크게 둔화되었다.
흡사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나쁜 사마리아인처럼, 부자 나라들은 IMF의 금융원조에 따른 조건으로, 채무국들에게 자국 경제를 조정하는 것과는 거의 무관하나 채권국들에게는 이익이 되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강요하는 일도 많다.
세계화의 주된 추진력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주장하듯 기술이 아니라 정치, 즉 인간의 의지와 결정이다.
실제로 남북전쟁을 초래한 노예제만큼이나 중요한 문제,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무역정책을 둘러싼 불화였다......링컨은 당선이 되자 공업 관세를 미국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은, 무역 자유화가 전체적으로 볼 때 이득이 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득을 본 사람들이 얻은 이득이 손해를 본 사람들이 잃은 것보다 많으므로, 이득을 본 사람들은 손해를 본 사람들이 입은 손해를 모두 보상하고 나서도 자기 몫으로 챙길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상의 원리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주장이 가진 문제는, 전체적으로 볼 때 무역 자유화가 반드시 이득을 가져 오지 않는다는 점과, 보상 과정이 시장 작용을 통해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만큼 예전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특허에 반대했다. 그는 아이디어는 '공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소유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중국의 WTO 가입을 지지하면서, '중국 사람들이 점점 많은 이동성을 확보하고, 더 부유해지고, 다른 생활방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 자신들의 생활에 미치는 결정에 있어서 더 큰 발언권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때 그는 자유시장은 경제발전을 촉진하고 경제발전은 민주주의를 요구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시장과 민주주의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충돌한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시장은 1달러 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회교문화는 다른 대부분의 문화와는 달리 고정된 사회적 위계질서가 없다. 회교는 상인의 종교이다 보니 계약에 대해 매우 진보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이런 경향은 법치주의를 장려한다.
만일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이 나라들은 시장에 대항하여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보다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능력의 향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능력의 향상을 위해서는 정확히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할까? 내가 내놓은 대답은 공업,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제조업이라는 것이다.
선수들의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데 경기장이 평평하다면 결국 그 게임은 불공정한 것이 된다......기울어진 경기장이 필요하다.
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을 수상한 학자답게 파격적인 내용이 많다. 그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박정희식 경제개발 계획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매우 예민한 주제에 대하여 사색을 넓힐 수 있는 데 좋은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2008. 1. 23. 부산에서 문형배 올림
'독서일기(경제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임스 G. 마치의 '문학에서 배우는 리더의 통찰력'을 읽었다. (0) | 2008.12.05 |
---|---|
신병철의 '통찰의 기술'을 읽다. (0) | 2008.07.21 |
매일경제신문사의 '부의 창조'를 읽고 (0) | 2007.12.16 |
허브 코헨의 '협상의 법칙' 중에서 (0) | 2007.10.10 |
로버트 치알드니의 '설득의 심리학' 중에서 (0) | 2007.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