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소설)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7. 8. 26. 21:47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읽었다. 바리는 북한에서 칠공주집의 막내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청진, 무산에서 행복하게 보낸다. 그러나 어느 날 찾아온 외삼촌의 실책으로 아버지가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되고 그 때문에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다. 더욱이 대규모 기근에 북한에 들이닥치자 바리는 할머니와 함께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에서 머물게 된다. 그녀는 중국에서 할머니를 잃고  낙원에 있는 안마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을 꾸려간다. 안마방에서 샹과 쩌우를 알게 되고 그들에게서 발마사지 기술을 배운 뒤에 안마사로 일한다. 특히 바리에겐 상대방의 과거를 꿰뚫어 보는 심령능력이 있어 고객의 신뢰를 얻어간다.

 

샹과 쩌우를 따라 따롄으로 이사를 와서 그들이 경영하는 마싸지 업소에서 안마사로 일했지만 쩌우의 동업자가 빌린 사채 때문에 마싸지 업소가 문들 닫게 되자, 바리는 샹과 쩌우와 함께 영국으로 밀항한다. 그 과정에서 쩌우가 죽게 된다. 영국에 도착한 바리는 중국식당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주방장으로 근무하는 루 아저씨를 알게 되고 그의 소개로 베트남인 탄 아저씨가 경영하는 통킹 네일쌀롱에서 발 마사지를 하게 되고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임대주택을 관리하는 압둘 할아버지를 알게 되고 그의 손자 알리와 사랑을 나누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압둘은 파기스탄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사람으로서 이슬람교를 믿는다. 바리는 뛰어난 발마사지 기술과 심령 능력으로  여러 명의 단골 손님을 만들어 가는데 그 중 에밀리 부인이 많은 도움을 준다. 영국에서 제법 안정을 찾을 무렵 9.11 테러 사건이 터지고 아프칸 전쟁에 참여하러 파키스탄으로 건너간 동생 우스만을 찾아 남편 알리도 영국을 떠나게 되면서 바리에게 고난이 닥쳐온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에서 영국으로 같이 밀항을 한 샹이 나타나고, 바리가 그녀에게 딸 홀리야를 맡기고 시장에 갔다 오는 동안 그녀는 집안을 뒤쳐 돈을 훔쳐 도망가고 그 사이에 딸이 계단을 오르다가 넘어져 죽는다. 바리가 그 고통을 겨우 극복할 무렵 기적적으로 남편 알리가 귀국하게 되고 그들 사이에 새로운 생명이 잉태된다.

 

이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대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통이 있다. 그렇지만 모두 자기가 풀어야 하는 거야.

 

스스로 살아갈 의지가 있어야겠지. 그래야 남들도 믿고 도와주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사고나 병으로 죽든 스스로 죽든 그건 새 출발이야. 홀리야는 새로 시작한 거다. 너도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신은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시는 게 그 본성이다. 색도 모양도 웃음도 눈물도 잠도 망각도 시작도 끝도 없지만 어느 곳에나 있다. 불행과 고통은 모두 우리가 이미 저지른 것들이 나타나는 거야. 우리에게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우여곡절이 나타나는 거야. 그러니 이겨내야 하고 마땅히 생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이야 한다. 그게 신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거란다.

 

육신을 가진 자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미 지옥을 겪는 거란다. 미움은 바로 자기가 지은 지옥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힘센 자의 교만과 힘없는 자의 절망이 이루어낸 지옥이다.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 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작가는 이 책에서 분쟁과 대립을 넘어 21세기를 구원할 생명수가 무엇일까 하는 화두를 던진다. 영국이라는 서구문명의 본가에서 다양한 인종과 종교와 어울리며 살아가는 한국인 바리의 모습에서 작가는 어떤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

 

             2007. 8. 26.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