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기타)

정수일의 '실크로드 문명기행'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7. 6. 23. 20:01

정수일의 '실크로드 문명기행'을 읽었다. 정수일님은 중국 옌변에서 출생하여 베이징대학교 동방학부를 졸업했고,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고려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공안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바도 있다.

 

이 책은 저자가 2005. 7. 17.부터 2005. 8. 25.까지 한겨레 실크로드 답사단의 일행으로 비행기, 차로 이동하면서 실크로드를 답사한 이야기와 사진을  담고 있다. 실크로드는 한나라 수도인 장안에서 시작하여 로마에 이르는 길로서 오아시스로, 초원로, 해양로 3갈래 길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한겨레 실크로드 답사단이 간 길은 오아시스로이다.

 

저자가 거쳐간 주요 도시와 문명을 꼽자면, 동서문명의 접합지 시안(옛 지명 장안), 오아시스 육로의 병목 둔황, 막고굴이 간직한 한국문화유산, 문명의 용광로 투루판, 고선지 장군이 서역원정을 시작한 쿠처, 신 실크로드의 요충지 우루무치, 옥의 고향 허텐, 신장의 축소판 카슈가르, 황금의 초원 카자흐스탄, 이슬람의 성도 타슈겐트, 한권의 통사책 부하라, 헬레니즘의 산실 니사, 태양의 땅 호라즘, 이슬람 시아파의 성지 마슈하드, 페르시아의 얼굴 시라즈, 조로아스터교의 성지 야즈드, 이란의 진주 이스파한, 전통과 현대가 갈등하는 테헤란, 기독교와 이슬람 아우른 다마스쿠스, 오아시스 육로의 서단 팔미라, 팔미라 가던 길에 들른 바그다드 카페, 알파벳의 산실 우가리트, 터키 성지 하란과 산르 우르파, 자연과 인간의 조화상 카파도키아, 인류문명의 노천박물관 이스탄불이다.

 

인상 깊게 읽었던 대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다름을 이해하는 데 무척 신경을 썼다. 다름을 이해했을 때 벌써 같음에 이르렀고, 그것이 곧 공생공영이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만리장성 들머리 왼쪽 벽에는 '불도장성비호한(不到長城非好漢)' 즉, '장성에 와 보지 않은 자, 사내대장부가 아니다'라는 뜻의 대문짝만한 현판이 붙어 있다어떤 이는 이 말을 중국 속담으로 아는데, 사실은 정치가 마오저뚱의 어록이다.

 

지금 시안에 도읍을 정한 한조는 36평방킬로미터의 넓은 대지에 길이 25킬로미터에 달하는 성벽을 둘러치고 이름도 '자손들이 영원히 평안하기를 바란다(欲其子孫長安)'는 소망을 담아 장안이라고 지었다.

 

원래 역사에는 재현이란 없는 법, 그 환각에 빠지기 쉬운 재현의 진정성을 유념해야 한다.

 

20세기 중엽 영국의 문명사가 토인비는 문명은 불리한 자연환경의 도전에 인간이 성공적으로 응전한 곳에서 탄생한다는, 이른바 문명탄생의 '도전과 응전' 원리를 내놓았다.

 

카레즈(건조지대의 지하 인공수로)는 베이징에서 항저우에 이르는 경항대운하와 만리장성과 더불어 중국 3대 역사의 하나라고 한다.

 

2천년 전 투루판 사람들은 낯선 포도나무를 서방에서 들여와 크게 다른 지역 환경에 맞게 순화시키는 슬기를 발휘함으로써 비로소 오늘과 같은 최상의 포도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순화력은 문명의 탄생과 성장의 중요한 요인이다

 

이슬람 교조 무함마드는 문도들에게 읽고 쓰기를 배우며 지식인을 존경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전쟁포로 한 사람이 무슬림 어린이 10명에게 일고 쓰기를 깨우쳐 주기만 하면 곧 석방했다고 하니, 배움을 얼마나 중시했는가를 알 수 있다......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에는 "그 누가 현세를 원한다면 지식을 얻어야 하고, 그 누가 내세를 원한다 해도 지식을 얻어야 하며, 또 그 누가 이 두가지를 다 원한다 해도 역시 지식을 얻어야 한다"고 지식습득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이란의 詩聖 하피즈는 "하피즈여, 세상의 정원에서 가을바람에 괴로워 마라, 이성적으로 따져 가시 없는 장미가 어디 있더냐"라고 고진감래의 인생철학을 설교하는가 하면, "난 가난을 존경하며 재물의 만족을 원치 않나니, 왕께 여쭈어라, 하루 세끼는 신이 주신다"고 청빈을 떳떳해 하며, "노년기에 젊은 시절처럼 사랑에 빠졌네"라고 하면서 잠깐인 짧은 인생을 즐기라고 이슬람의 성선설을 되뇌기도 한다. 

 

철학자 니체는 명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는 영어이고, 차라투스트라는 페르시아어임)를 자신의 이상적 분신으로 간주하고 '위버멘시(초인)'로 대표되는 그를 대지의 주인이며 인류의 미래를 이끌어 갈 지도자로 추앙한다. 그러면서 그를 통해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돌고 돈다'는 영원회귀설을 터득한다......조로아스터 사후 3천 년이 되면 구세주가 나타나는데, 그 때 인간은 그의 앞에서 부활해 최후심판을 받는다. 바른생각과 바른행동, 바른 말을 한 선인은 천국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무사히 통과하나, 그렇지 못한 악인은 다리에서 발을 헛디뎌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살라딘은 이슬람 역사상 드물게, 어찌 보면 유일하게, 동서양 모두에게서 위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살라딘은 아이유브 왕조를 세운 다음 국교를 시아파에서 전통파인 수니파로 바꾸고 분열위기에 처한 이슬람세계를 재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한다. 제3차 십자군 전쟁 때 일국의 통치자인 술탄에 앞서 용, 지, 덕을 겸비한 무장으로서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가 이끄는 십자군과 대결한다......유리한 전황임에도 불구하고 패전한 적장에게 손을 내밀어 평화협정을 주도한다. 뿐만 아니라 무모한 리처드가 야파 전투를 벌여 반격해 오다가 낙마한 신세가 되자, 살라딘은 "고귀한 사람은 그렇게 땅에서 싸우면 안 된다"고 일침하면서 자신의 말 두 필을 보낸다. 리처드가 열병에 걸리자 위로편지와 함께

약과 얼음을 구해 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십자군 지휘자들조차도 그를 가리켜 '고귀한 적'이라고 일컬으면서 존경했으며, 단테의 '신곡'에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등 희세의 위인들과 함께 '최소한의 벌을 받는 고결한 이교도'로 등장한다.

 

이스탄불은 로마, 비잔틴, 오스만 3대 제국의 수도로 무려 1528년 동안, 122명의 통치자에 의해 세계사의 한 중심에 우뚝 서 있었다. 이것은 3대 제국(한, 수, 당)의 수도로 장수를 자부하던 중국의 장안(738년 간 38명이 통치)보다 배가 넘는 나이다......실크로드 육로의 서단에 자리한 이스탄불은 시종일관 동서 문물의 집산지 구실을 해 왔다.

 

저자는 이 책 말미에서 오아시스로를 한반도까지 연장하는 것은 역사의 당위적 복원이라고 주장한다. 이 연장의 요체는 시안으로부터 한반도까지 육로 노정을 밝혀 내는 것인데, 저자가 추정하는 노정은 다음과 같다. 한반도의 남단(경주)에서 출발해 서울(한주)과 평양을 지나, 강계(동황성)에서 압록강을 건넌 다음 선양(심주)이나 요중(광주)를 거쳐 고대 한, 중 접경지인 초양(영주)에서 중국 땅으로 접은 든 다음, 산하이 관(임투관)을 넘어 베이징(유주)에 도착하여 남하해 뤄양에 이른 후 서진해 시안에 도달한다.

 

이슬람 문명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설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인간사에 대한 저자의 깊은 이해를 통하여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07. 6. 23. 부산에서 문형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