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기타)

지허스님의 '선방읽기'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7. 4. 14. 18:27

지허스님의 '선방읽기'를 읽었다. 창원지방법원을 떠나오는 길에 강재현 전 경남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부터 이별의 선물로 받은 책이다. 1973년 봄 신동아의 논픽션 공모에 당선된 작품으로 지허라는 서울대 출신 스님의 선방 일과가 솔직담백하게 담겨 있는데, 현대불교신문에 연재되어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고, 여시아문이라는 출판사에서 2000년 한 권의 책으로 발간되었다고 한다.

 

책 제목 그대로 지허라는 스님이 10월 1일 오대산 상원사에 도착하여 다음 해 1월 15일 그곳을 떠나올 때까지 선방에서 보낸 일과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상원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지금까지 선방으로 꾸준히 어어 내려온 선 도량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신 도량 즉 적멸보궁이 있어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는다고 한다.

 

선방에서는 일년 네 철 중에서 여름과 겨울철에 절 출입을 금하고 수도에 전력하는데, 그 중 10월 15일에 시작되어(結制하고 한다)  다음해 1월 15일 끝나는(解制라고 한다) 동안거에 저자가 참여하였다. 동안거의 일과를 살펴보면 오전 2시 30분 기침(起寢)하여 오후 9시에 취침할 때까지 6시간의 공양 및 휴게시간을 제외하고는 참선을 하는 것으로 되어 고단함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동안거에 임하는 스님들이 백척간두에 서서 진일보하겠다는 결단과 의지가 충만해 있다고 하는데, 정말 백자나 되는 높은 장대끝에서 한 걸음 더 내딪는 결단과 의지가 없다면 도저히 배겨낼 수 없는 일정이다. 동안거의 반살림을 끝내고 반살림을 시작할 때는 용맹정진을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수면을 거부하고 장좌불와(長座不臥)함을 말하는 것인데 주야로 일 주일 동안 한다고 하며 이 과정에서 많은 스님들이 탈락한다고 한다.

 

출가한 스님들도 인간이지라 별식을 먹는 날은 즐겁고, 세모에는 얼른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 책에서 본 인상적인 대목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나는 숙명의 객체이지만 운명의 주체이다. 숙명은 자기 부재의 과거가 관장했지만 운명은 자기 실재의 현재가 그리고 자신이 관장하는 것이어서, 운명을 창조하고 개조할 수 있는 소지는 운명(殞命) 직전까지 무한히 열려져 있다.

 

그 많은 화두 가운데서 자기에게 필요한 화두는 단 하나이다. 단 하나일 때 비로소 화두라는 결론이다.

 

훌륭한 선객일수록 훌륭한 보건자이다. 견성은 절대로 단시일에 가능하지 않고, 견성을 시기하는 것이 바로 병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섭생에 철저하다. 견성은 생의 초월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의 조화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열반은 있고 또 열반에 가는 길도 있고 또 그것을 교설하는 나도 있건만, 사람들 가운데는 바로 열반에 이르는 이도 있고 못 이르는 이도 있다. 그것은 나로서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나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이다(석가모니)

 

마치 죽음을 이긴 사람에게 죽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죽음은 결코 두번 오지 않는다.

 

나는 타인에 대하여 필요 이상의 존재이며 타인도 나에 대하여 필요 이상의 존재. 원죄란 타인이 있는 세계 중에 내가 태어난 것(샤르트르)

 

양극에 부딪쳐 상극분(相剋分)에 그치지 않고 더 높고 큰 가치로 지양 종합하여 나아간다. 중도란 단순한 중간이나 중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무궁무진한 불교의 정신에서 다즉일의 진리를 선양하는 데 그 본의가 있다. 一卽多이다.

 

지허스님이 상원사를 떠나면서 여비조로 받은 돈이 천원이라는 데서 세월의 격차를 느끼기도 하지만, 진리를 향한 구도자의 자세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음을 읽을 수 있었다. 특별히 신앙하는 종교는 없지만, 깨달음을 찾아 떠나는 지허스님의 발걸음에서,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 일반의 고달픔을 읽을 수 있었다.     

 

            2007. 4. 14. 부산에서 문형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