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법률

착한 사람들을 위한 법 이야기

자작나무의숲 2006. 9. 2. 23:18
 

착한 사람들의 법 이야기

1. 법 없이 살 사람

  착한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들 한다. 아마도 법의 강제 없이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란 뜻이리라. 과연 착한 사람에게 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

  필자는 법을 매개로 많은 사람과 만난다. 1996년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에서 판사(법원에는 판사밖에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법원에 판사도 검사도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여 이렇게 밝힌다)로 근무하던 시절 취급한 영장청구사건 중엔 이런 것이 있었다.

  B가 A로부터 굴착기를 1억 원에 샀다. 그런데 굴착기는 A가 F라는 굴착기 제조회사로부터 1억 2천만 원에 산 것인데, 계약금 및 선불금으로 2천만 원 정도 지급하고 잔대금은 36개월 할부로 지급하기로 하였고, 대신 F라는 회사는 할부대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굴착기에 채권최고액 1억 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한 상태였다. A는 당시 할부금을 2-3회 납부한 실정이었다.

  그런데 B는 이러 사정을 전혀 모르고 A로부터 1억 원에 굴착기를 샀고, 돈을 모두 지불한 다음 굴착기를 넘겨받고서야 그와 같은 사정을 알게 되었다. B는 굴착기만 손에 넣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중기 등록원부(경북 상주시청에 보관되어 있었다)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근저당권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다. B는 A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허사였다. F라는 제조회사에서는 할부금 독촉이 심하였다. B는 자기만 손해를 볼 수 없다는 심보가 발동하여 모든 것을 숨기고 타인에게 굴착기를 처분하기로 마음먹는다.

  B는 중개업자인 C에게 전매를 의뢰하였고, C는 근저당권이 설정된 사실을  숨기고 D에게 굴착기를 8천만 원에 처분하는 계약을 성사시킨다. D역시 중기 등록원부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매매대금을 모두 지급한 다음 굴착기를 넘겨 받았다. 그 후 굴착기의 권리관계를 알게 된 D는 B와 C를 사기죄를 고소하였고, 마침내 수사기관은 B와 C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필자는 그 때 당직판사로서 영장청구 사건을 담담하게 되었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B와 C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무지의 소치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굴착기를 샀고, 자기도 2천 만원 손해를 보고 처분하였으며, 사기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자 몸가짐을 삼간 흔적이 역력한 점에서 B에게 동정이 많이 갔으나, D에 대한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사건에서 B와 D라는 사람은 평소 착한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법을 몰랐다. 즉 굴착기도 자동차처럼 등록원부가 있고, 등록원부를 보아야 정확한 권리관계를 알 수 있다는 법을. 그래서 B는 그 법을 몰라 자신이 피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D라는 사람에게 새로운 피해를 안겼다.

2.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필자는 법이 어떠하다고 정의할 만큼 경력도 풍부하지도 않고 타고난 재주도 없지만, 1983년 법학을 전공한 이래 지금까지 18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경험(그런 점에서 필자는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에 비추어,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종종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모이는 모임에 나가곤 하는데, 거기서 늘 하는 말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나에게 힘써달라고 전화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법을 물어보라.”이다. 도대체 자신의 전 재산과 다름없는 30,000,000원을 전세금으로 걸면서 그 집이 경매중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대개 사건이 터지고 난 뒤 법조인에게,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했으니 수사기관에 힘 좀 써서 즉시 구속되게 해달라고 전화를 한다.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보장적 기능이다. 국민에게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고, 거기에 저촉되지 않으면 국민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보호적 기능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만으로 전세권등기를 한 것과 거의 동일한 효과를 부여하는 조항과 임대차기간을 최소한 2년 보호하는 조항, 근로기준법에서 근로자의 최종 3개월분 임금, 최종 3년분의 퇴직금(1997. 12. 14. 이전 취업한 근로자는 그 이전 계속근로연수에 해당하는 퇴직금에 그 이후 계속근로연수에 대하여 발생하는 최종 3년간 퇴직금을 합하되 평균임금 250일을 초과할 수 없다), 재해보상금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는 조항 등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보호적 기능도, 경매절차에서 배당요구를 하는 임차인이나 근로자에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은 초라하기만 하다.

3. 착한사람부터 법을 알자

판사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은 법은 모르고, 법은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건일수록 사건해결이 어렵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착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고, 착하지 않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이 따로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길이다. 그 길만이 법이 더 이상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포르노 잡지를 사 보는 것도 유익하겠지만, 아주 가끔은 자기 분야에 속하는 법에 관한 책을 사 보자. 법조인과 만나 당장 생활에 써먹을 수 있는 상식을 알아두자. 인터넷(대법원 홈페이지 www.scourt.go.kr 포함)을 통하여 상담하거나 스스로 깨달아 보자. 왜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웬 허름한 변호사가 궁지에 몰린 주인공에게 나타나 구원의 손을 뻗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는가?

  필자는 기회가 되면 법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말이 나온 김에 여기서 법 상식 몇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의 만남에 작은 결실을 맺자. ① 약속어음의 배서인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지급제시 전에 수취인, 발행지, 발행일, 만기와 같은 어음요건을 모두 기재하여야 한다. ② 수표는 발행일로부터 10일 이내에 지급제시 하지 않으면 지급책임이 없다. ③ 거래장부에는 항상 상대방의 서명 또는 날인을 받아 두어야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 ④ 부동산에 관한 거래를 할 때는 계약 당시뿐만 아니라 잔금을 지급할 때도 등기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⑤ 전세를 든 경우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아 두어야 하는데, 전입신고는 ‘등기부상’ 주소와 동일하게 하여야 하고(동, 호수 정확하게), 확정일자는 누구라도 아무 등기소나 동사무소에 임대차계약서만 가져가면 된다. ⑥ 배우자가 도망가고 6개월이 지나면 자동이혼 되는 법은 없다. 그 때도 이혼소송을 제기하여야 한다.

                2001. 4. 22. 오민대 제3호에 부산지방법원 판사 문형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