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좌와 벌을 또다시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7. 1. 8. 19:10

1.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소설 <죄와 벌>을 세번째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최초의 장편소설로서 1865년 씌여졌다. 당시 저자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한해였다. 첫 아내 마리아가 세상을 떠났고, 그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하고 원조와 격려를 아끼지 않던 형 미하일이 막대한 부채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고, 그의 간질병 발작이 더욱 빈번해지던 무렵이다.


이 책을 쓸 당시 러시아에는 허무주의적 초인사상이 유행하고 있었다. 저자는, 초인사상의 소유자인 라스콜리니코프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반역 폭력 혁명을 상징하는 그의 허무주의적 초인사상과 오만성 및 무신론을, 청순한 창녀 소냐의 온순함, 신앙심과 대립시켜 소냐의 승리를 묘사했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강도살인의 범행을 저지른 후 창녀 소냐에게 범행을 털어놓고 소냐의 권유로 자수를 한다. 소냐는 부모 형제를 먹여 살리려고 창녀가 되고, 아버지 마르메라도프가 마차에 치어 죽게 되자, 이를 안 라스콜리니코프가 미망인 카체리나에게 장례비용에 사용하라며 돈을 보탠 것을 계기로 소냐와 만나게 된다. 

고백의 대상으로 소냐를 왜 선택했을까? '난 당신에게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오. 난 모든 인류의 고통에 대해서 무릎을 꿇었던 거요.' '당신이 죄지은 여자가 된 까닭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죽이고 남의 희생이 된 때문이지.' 라는 라스콜리니코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때 소냐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았던들, 나는 여태까지 살아올 수도 없었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2. 죄

라스콜리노프는 손도끼로 전당포 노인 알료나를 죽이고  돈과 귀금속을 가지고 나왔고, 마침 그곳에 있던 알료나의 동생인 리자베타를 손도끼로 죽인다. 그리고 뺏은 물건을 확인해보지도 않고 돌 밑에 숨겨둔다. 그의 죄는 무엇인가? 범행동기는 무엇일까?


(1) '노파의 돈을 빼앗아 그것을 어머니의 생활비로 드려서 몇 년 동안 편히 지내도록 하고, 난 대학생활로 돌아가서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할 기반을 마련하고-그리고 이런 일을 철저히 실천해서 새로운, 완전한 출세의 길을 닦자고 했던 거요.'라고 라스콜리니코프가 말한다. '너에게는 우리의 행복과 기대가 걸려 있다. 너는 우리들의 전재산이란다'는 어머니 플리헤리야의 편지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이는 범행 후 강탈한 물건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데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2) 라스콜리니코프는 지배하기 위해 태어난 소수의 예외적인 인간과, 지배당하고 복종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대다수의 범인으로 전인류를 분류했다. '인간은 자연법칙에 의해서 대체로 두 개의 부류로 분류될 수 있다. 보다 저급한 보통의 인간=전적으로 자기와 유사한 인간을 생식하는 기능밖에 없는, 소재와 부류와  본래의 인간=자기의 동료 중에서도 새로운 주장을 토할 수 있는 천부의 소질이며 재능을 지닌 인간'으로 분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난 나폴레옹이 되고 싶어서 살인을 한 것이란 말이오.' '나폴레옹이 내 입장이었다고 하고, 그가 출세길을 개척하려고 투울롱도, 이집트 원정도, 몽블랑도 넘지 않고, 그런 빛나는 업적 대신에 어떤 늙어 찌들은, 말단 관리의 과부가 가지고 있는 장롱 속에서 돈을 훔치기 위해서는 그 노파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면 나폴레옹은 그런 짓을 감행했을까?'


'하나의 조그마한 범죄 같은 것이 몇 천이라는 훌륭한 사업으로서도 보상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단 하나의 죽음으로 몇 천 명의 생명이 부패와 타락으로부터 구출되는 것이다. 하나의 죽음과 백의 생명을 바꾸는 것이다.'라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난 다만 이를 죽였을 뿐이오, 소냐, 아무 이익도 없고 해만 끼치는 더러운 이를 말이오' '가난한 사람들의 피만 빨아먹는 이를 죽였으니 마흔 가지의 다른 죄도 용서받아 마땅한 거다. 그게 죄가 된단 말이냐? 난 다만 나 자신의 옹졸하고 무능한 것에 싫증이 나서 그래서 자수하려는 거야!'라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보다 많은 것을 성취하는 자가 인간 사회에서 보다 올바른 자가 된다면, 그와 동시에 보다 많은 것을 무시할 수 있는 자는 인간 사회에서는 입법자가 되는 거요.'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것이 범행의 동기라면, 라스콜리니코프는 왜 범행을 숨겼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3) '난 자신을 죽인 것이지 노파를 죽인 것은 아니야! 그때 단번에 나 자신을 죽여버린 거요  영원히!......그 노파를 죽인 것은 악마였소, 난 악마였어......' '난 이 우매하고 옹졸했던 행위로, 먼저 자립하고 제1보를 내디딜 자금을 얻으려 했던 거야. 그렇게 하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익을 이 세상에 가져다주게 되고, 동시에 모든 나의 죄는 속죄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그런데, 난 그제1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견디지 못했다, 왜? 내가 우매하고 옹졸했기 때문이다.'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진술은 이 범행이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음을 뒷받침한다.


그래서 등장하는 게 일시적 정신착란 상태에서 한 범행이 아닌까 하는 생각이다. 위에서 본 (1)의 성격도 있고, (2), (3)의 성격도 있는데, 범행 당시는 일시적 정신착란 상태로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 봐도 어색한 경과를 보였고, 특히 범행 직후 주위 사람들에게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을 드러내게 되고 이것이 치안판사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3. 벌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에게 '루진이 살아서 추잡한 일을 계속하게 하느냐, 아니면 카체리나가 죽어버려야 하느냐, 아니면 카체리나가 죽어버려야 하느냐 하는 경우가 생기면 당신은 어떻게 해결하겠소? 어느 쪽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질문한다. 


이에 대하여 소냐는 ' 어째서 당신은 물어서는 안 될 것만 물으세요? 그런 것이 나의 결단에 달려 있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난 누군 살아야 하고 누군 죽어야 한다고 심판할 사람이 아니잖아요?'하고 답한다. 그 대신에 "네거리에 나가서 모든 사람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땅바닥에 키스하세요. 당신은 대지에 대해서 죄를 범했으니까요. 그리고 큰 소리로 뭇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살인잡니다' 하고 말하세요"라고 권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결국 제2급의 유형으로, 형기도 불과 8년을 선고받았다. 고려된 양형요소는 다음과 같다.

(1) 그가 강탈한 물건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회오의 정이 높은 때문이고 동시에 범죄 수행 당시의 범인의 정신능력이 결코 건전한 상태에 있지 않았다. '범인은 사실상 그 돈주머니를 열어보지 않았다. 따라서 이 범죄는 일종의 일시적 정신착란, 이를테면 장래의 목적이나 타산에서 이뤄진 것이 아닌 병적인 살인강도의 편집광의 발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도 같은 맥락이다.


(2) 철저한 광신자(니콜라이)가 허위 자백을 함으로써 사건이 이상하게 분규를 거듭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진범에 대해서 명백한 증거는 고사하고 혐의조차 두고 있지 않고 있을 때 자수했다.


(3) 라스콜리니코프가 대학 재학 당시 호주머니를 털어서 가난한 폐병쟁이 학우 한 사람을 도와주고 거의 반년이나 부양했다. 그 학우가 사망하고 나서 혼자 남게 된 그의 부친을 돌봐주고 그 노인을 입원시켰고 노인이 사망하자 장례까지 치러주었다. 


(4) 밤중에 불이 났을 때 불길에 싸인 어느 방으로부터 두 어린이를 구출하고 그때문에 화상까지 입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아무리 엄중하게 비판해보아도, 그리고 냉혹한 양심에 비추어보아도 자신의 과거엔 아무 죄도 발견되지 않았고, 겨우 발견된 것이 있다면 누구나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패'라는 것이 있을 뿐이었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베리아에 같이 따라와 옥바라지를 하는 소냐의 사랑에 마음을 움직인다.


'그는 느닷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하여 그만 그녀의 발부리에 던져버린 것 같은 모양이 되었다. 그는 울면서 그녀의 무릎을 끌어안았다......두 사람을 부활하게 한 것은 사랑이었고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 상대편 마음의, 결코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의식 속에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그 무엇이 마땅히 생겨났어야 했다. 그의 머리맡에는 성경이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기계적으로 집어 들었다. 그 성경은 소냐의 것이었는데, 그녀가 그에게 나사로의 부활에 대한 부분을 읽어주었던 바로 그 책이었다.'


형벌이 아니라 기독교적 사랑이 라스콜리니코프를 교화시켰다.


            2017. 1. 8.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