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레 미제라블을 다시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7. 2. 12. 13:49

1.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레 미제라블>을 다시 읽었다. 21년 전에 읽을 때는 2년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1달이 안 걸렸다. 

위고는 이 소설을 1845년 <르 미제르>라는 제목으로 쓰다가 12년간 중단하고 1860년 <레 미제라블>로 개제해서 다시쓰기 시작하였다. 제목의 뜻은 '불쌍한 사람' 인 동시에 '한심한 자'를 의미한다.


소설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팡틴, 2부는 코제트, 3부는 마리우스, 4부는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와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 5부는 장 발장이다.


주요인물은 위의 4명 외에도, 테나르디에를 빼놓을 수 없다. 강한 자에게 간사하고, 약한 자는 잡아먹으려는 이리와 같은 심성을 대변하는 테나르디에는 팡틴의 요청으로 그녀의 딸인 코제트를 양육하나 그녀를 학대한다. 결국 코제트는 장 발장에 의하여 구제된다. 테나르디에는 의도하지 않게, 장 발장이 곧 마들렌 시장임을, 장 발장이 마리우스를 구출하였음을 , 자베르는 장 발장이 죽인 게 아니라 자살하였음을 코제트의 남편인 마리우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하에서는 필요에 의하여 밀리에르 주교, 자베르 경감, 장 발장을 중심으로 살피되, 역자인 방곤 교수의 작품론에 의존하다..


2. 밀리에르 주교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즉, 빵집 창살과 유리를 한꺼번에 주먹으로 때려부순 후 구멍으로 빵 하나를 훔쳤다가 감옥에 가게 된 주인공 장 발장은 탈옥을 여러 차례 시도함으로써 흉악범의 낙인이 찍혀 총 19년(가택침입절도 5년, 탈옥 기도 4회로 14년)의 형기를 끝내고 돌아왔으나 사회로부터 전과자라는 이유로 식사와 숙박을 거부당한다. 

그는 밀리에르 주교의 배려로 주교관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잠을 자게 되는데, 새벽에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다가 헌병에 붙잡혀온다. 밀리에르 주교는 장 발장에게 '나는 당신에게 촛대를 드렸는데, 그것도 역시 딴 것과 마찬가지로 은이니, 200프랑은 넉넉히 받을 수 있을 거요. 어째서 그것도 그 그릇과 함께 가져가지 않았소'라며 장 발장을 두둔한다. 

이로써 장 발장은 풀려난다. 밀리에르 주교는 어리둥절한 장 발장에게 말한다.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미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내가 값을 치르는 것은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요.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파멸에서 끌어내어, 그것을 천주께 바치려는 것이오'


밀리에르 주교는 어떠한 사람일까?


그는 고등법원 판사의 아들로서 젊은 시절을 사교와 엽색으로 거의 보냈다. 혁명이 일어나자 이탈리아로 망명했다가 돌아와서는 신부가 되었다. 황제가 숙부인 페슈 추기경을 방문했을 때, 때마침 때마침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밀리에르 신부에게 황제가 물었다.

'당신은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대체 누구시오?' 밀리에르 신부는 말했다. '폐하께서는 한 노인을 보고 계시옵고, 저는 한 위인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제각기 얻은 바가 있는 셈입니다'  황제는 바로 그날 추기경에게 그 신부의 이름을 물었고, 얼마 안 되어 밀리에르 씨는 디뉴의 주교에 임명되었다. 


그는 '무식한 자들에게는 가급적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무료교육을 하지 않음음 사회의 죄다. 사회는 자신이 만들어낸 암흑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한다. 마음 속에 그늘이 가득 차 있으면 그 때문에 죄가 범해진다. 죄인은 죄를 범한 자가 아니라 그늘을 만든 자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도둑이나 살인자를 결코 무서워해서는 안돼. 그건 외부의 위험일 뿐이며, 조그마한 위험이야. 우리들이 두려워할 건 우리 자신이야. 편견이야말로 도둑이야. 악덕이야말로 살인자야. 큰 위험은 우리들 내부에 있지. 우리들의 머리나 지갑을 위협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실로 우리들의 영혼을 위협하는 것이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였다. 


국민의회 의원이 말했다. '폐습을 타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오. 풍조를 변경하지 않으면 안되오. 풍차는 이제 없어졌지만, 바람은 아직 남아 있는 것이오.' 밀리에르 주교는 말하였다. '당신네들은 타도했소. 타도하는 것이 유익할 수도 있소. 히자만 나는 분노 섞인 타도는 믿지 않소.' 국민의회 의원이 말했다. '정의에는 분노가 있는 법이오. 정의의 분노는 진보의 한 요소입니다'


그는 병원의 침대를 둘 곳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주교 저택과 병원을 바꾼다. 그의 사생활은 그의 공적 생활과 같은 사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청빈하였다. 성무와 예배를 끝내고 남은 시간을, 맨 먼저 극빈자와 환자와 고생하는 자를 위하여 바쳤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일을 했다. 혹은 정원의 땅을 갈고, 혹은 독서하고 글을 썼다.


이 지방 가난한 사람들은 본능적인 애정에서 그를 비앵브뉘(Bienvenu, 영어로 welcom이라는 뜻) 각하라고 불렀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청송지본 재어성의 성의지본 재어신독'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밀리에르 주교의 생활을 보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주교의 집에 온 장 발장에게 주교는 말한다. '이곳은 내 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집이오. 이 집의 문은 들어오는 사람에게 그 이름을 묻지 않고, 다만 그에게 고통이 있는가 없는가를 물을 뿐이오'


장 발장은 아주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고, 글도 못 배웠으며, 성장한 후터는 파브롤에서 나뭇가지 치는 일을 했다. 

밀리에르 주교의 관용은 장 발장을 교화시킨다. 장 발장은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몽뢰이유 쉬르 메르에서 흑옥 제조산업을 일으켜 시장이 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고용해서 생계를 돕다가, 사생아 코제트를 시골에 맡기고 창녀가 되었다가 병이 들어 사경에 빠진 여직공 팡틴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3. 자베르

밀리에르 주교의 대척점에 평생을 장 발장을 체포하기 위햐여 경찰로서 얼음과 같은 차가운 마음과 관권이라는 힘을 등에 업고 죄를 미워하고, 죄인을 벌레 이하로 멸시하는 자베르 경감이 위치한다.


그는 '지극히 단순하고 비교적 선량하기는 하지만 너무도 과장하기 때문에 도리어 나빠졌다고 할 수 있는 두 개의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즉 관에의 존경과 반역에의 증오였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절도나 살해 그 밖의 모든 범죄는 반역의 변형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위로는 총리대신으로부터 아래로는 모든 경찰에 이르기까지, 국가에서 관직을 가지고 있는 자에 대해서는 오로지 일종의 맹목적인 깊은 신용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한번 법을 범하여 죄악 속에 발을 들여놓은 자에 대해서는 모조리 경멸과 반감과 증오를 품고 있었다. 그는 절대적이어서 예외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팡틴이 마들렌 시장의 얼굴에 침을 뱉고 욕을 하였는데도 마들렌 시장이 팡틴을 용서라려고 하자, 자베르는 '시장님, 황송합니다만, 저 여자의 모욕은 시장님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모욕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에 마들렌은 '최고의 법은 양심이야. 나는 저 여자가 한 말을 들었어. 그리고 나는 내가 어떻게 할지를 알고 있고.'라고 응수한다. 



자베르는 1832년 6월 5일과 6일의 폭동이 일어나자 바리케이드 근처로 잠입하였다가 붙잡혀 처형을 앞두고 있었다. 코제트가 사랑하는 마리우스가 폭동에 참여하자 장 발장은 마리우스를 구하기 위하여 바리케이트 안으로 진입하였다가 자베르를 발견하고 그를 풀어준다. 

그리고 장 발장은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메고 파리의 하수도를 거쳐 탈출하나 거기엔 자베르가 지키고 있다. 그런데 자베르는 잘발장을 끝내 풀어준다.


자베르는 자기 앞에서 두 갈래의 길을 보았다. 두 쪽 다 마찬가지로 곧은 것이었으나 어쨌든 둘이었다. 생전에 오직 하나의 직선밖에는 몰랐던 그는 공포심에 떨었다. 그리고 괴로움의 종국에는 그 두 길이 서로 상반되는 것을 알았다. 두 개의 직선은 서로 배척하고 있었다.


자베르를 놀라게 한 한 가지 일은 장 발장이 그를 용서한 일이었으며, 그를 아연실색케 한 하나의 사건은 그 자신이 장 발장을 용서한 일이었다. 그는 결국 센 강에 뛰어들어 죽는다. 


4.판사 

장 발장은 주교의 집에 자던 날 다음과 같이 자문한다.


불행한 사건에서 잘못은 자기 한 사람에게 있었던가? 첫째, 노동자인 자기에게 일거리가 없었고, 부지런한 자기에게 빵이 없었다는 것은 중대한 일이 아니었는가? 다음에, 죄를 저지르고 자백하기는 했지만, 형벌은 가혹하고 과도하지는 않았는가? 형벌의 과중도 죄악을 없애지 못하지는 않았던가? 인류 사회는 결핍과 과중 사이에, 일거리의 결핍과 형벌의 과중과의 사이에 한 가련한 인간을 사로잡아놓을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판사는 판결에 앞서 이런 피고인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장 발장이 헌병에게 체포되었을 때 밀리에르 주교가 사실대로 고했다면 장 발장은 주교의 은식기를 훔친 것과 그 직후 소년을 상대로 40수짜리 은전을 빼앗은 것까지 포함하여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장 발장은 '무감정한 인간'이 되었을 것이고, 마들렌 시장의 선행은 베풀지 못했을 것이다. 장 발장으로 오인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처지에 있던 샹마티외사건에 스스로 증인으로 출석하여 장 발장임을 고백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교는 자기 신생명의 제1단계를 그어주었고 샹마티외는 그 제2단계를 긋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코제트는 구제되지 못했을 것이다. 폭도에게 잡힌 자베르를 구출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장 발장의 관용에 눈을 뜬 자베르 역시 그후 체포한 장 발장을 풀어준다. 비록 관리의 의무의 인간의 양심 사이에 고민하다가 자살로 끝나지만 이는 비극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베르의 인간적인 면을 드러낼 뿐이다.


판사에게는 밀리에르 주교의 자비심과 자베르 경감의 성실성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장 발장이 죽음을 앞두고 코제트와 마리우스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죽는 것 아무 것도 아니야. 살 수 없는 것이 무서운 일이지.' 


                              2017. 2. 12. 부산에서 자작나무

'독서일기(추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과 흑을 다시 읽고   (1) 2017.10.22
전쟁과 평화를 다시 읽고   (0) 2017.09.09
좌와 벌을 또다시 읽고  (1) 2017.01.08
카라마조프형제들을 다시 읽고  (0) 2016.12.11
부활을 다시 읽고  (0) 2016.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