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부활을 다시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6. 11. 20. 21:18

1. 톨스토이

톨스토이가 위대한가? 토스토옙스키가 위대한가? 그건 알 수 없다. '누구를 더 좋아하는가' 이 문제는 쉽게 답할 수 있울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톨스토이를 읽고 나면 톨스토이가 더 좋고, 토스토옙스키를 읽고 나면 토스토옙스키가 더 좋다. 지금은 톨스토이가 좀 더 좋다. 9년만에 톨스토이의 <부활>을 다시 읽었기 때문이다. 


<부활>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나는 오늘 톨스토이가 네흘류도프 공작을 내세워 러시아 사법제도의 개선을 주장했다고 말하고 싶다. 


우선 이 소설은 주인공 카튜샤가 잘못된 재판으로 인하여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침 그 재판에 네흘류도프 공작이 배심원으로 참여하였고, 배심원들은 카튜샤가 피해자에게 독약을 건넸지만, 단순히 수면제 정도로 알았을뿐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점을 알고도 평결결과를 적은 답신서에 그 점을 빠뜨린다. 재판장은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짐작하면서도 애인과의 만남에 늦지 않겠다는 지극히 사소한 이유로 넘어가고, 결국 카튜샤는 징역 4년을 선고받는다. 


뒤늦게 네흘류도프는 잘못을 깨닫고 이를 시정하고자 여러 자기 방법을 시도하지만 원로원에 한 상고는 기각되고 황제에게 한 특별청원에만 한가닥 기대를 건다. 극적으로 시베리이로 가는 길에 황제의 허가가 떨어져 카튜사에 대한 징역형은 취소된다. 

네흘류도프는 카튜샤를 농락하고 100루블을 던져주고 떠났고, 카튜사가 자포지기의 심정으로, 원망의 심정으로, 형편에 이끌려, 매춘부의 길에 들어선 것도 모자라 억울한 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이로 떠나자, 죄책감을 느끼고 그녀와 결혼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시베리아로 같이 떠나는데 그 과정에서 교정제도의 문제점을 깨닥게 된다.


물론 톨스토이는 헨리조지의 토지사유권 폐지 주장에 공감하면서 소설 곳곳에 헨리조지의 사상을 소개한다. 예컨대 '농민들의 궁핍, 그 궁핍의 중요하고도 직접적인 원인은 땅이 그들의 수중에 없고 토지에 대한 특권을 이용하여 농부들의 노동으로 생활해 나가는 지주들 수중에 있기 때문이었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2. 부활

우선 톨스토이는 범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이 젊은이는 문제될 만한 흉악범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다. 그가 지금 그런 인간이 되어버린 것은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젊은이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이런 불행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매개체인 나쁜 환경을 없애야 한다는 건 두말한 나위 없는 사실이다.' 


당연하게도 범죄에 대한 처벌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인간은 인간을 다스릴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이 입증되어 가장 바람직한 최선책은, 이로울 것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악하고 비도덕적이며 잔혹하기만 방법을 포기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너희는 지난 수세기 동안 죄인이라고 판결된 사람들을 수천 수만 처벌했으나 과연 죄인이 사라졌던가? 오히려 처벌에 의해 더욱 타락한 죄인과 남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판사, 검사, 예심판사, 교도관 등과 같은 죄인들로 하여 더욱 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에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남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법적인 공인을 받고 있는 죄인들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타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에게 연민과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들 때문임을 네흘류도프는 알게 되었다'


톨스토이의 사법제도에 대한 생각은 다음 구절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남을 재판하기 위해선 우선 본인이 말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해 주어야 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서로 괴롭힌다든가 때려서도 안 되지만 특히 아직 유죄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구박한다든가 해서는 더욱 안 된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때문에 자기를 어느 당파와 관계가 있는 자유주의자라고 부르는 데는 항상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톨스토이는 관리에 대하여 말한다.

'그들은 자기가 관직에 몸을 두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순수한 동정도 품지 않는 몰인정한 인간이 돼버린 것이다. 관리인 그들은 돌 땅에 비가 스며들지 않듯이 인간애가 도무지 스며들지 않는 것이다'


카튜사는 처음에 네흘류도프 공작의 청혼을 받고 '당신은 이 세상에선 나를 농락하고 저 세상에 가서는 나를 미끼로 구원받고 싶은 거죠?' 라며 거절하다가 나중에는 네흘류도프 공작을 사랑하여 그를 떠난다. 교도소에서 만난 정치범인 시몬손을 따른다.


'네흘류도프는 그의 너그러운 마음과 과거에 저지른 일 때문에 그녀에게 청혼한 것이었으나 시몬손은 현재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사랑하고 단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었다'와 관련되어 있다기보다는 '그녀는 네흘류도프를 사랑하고 있었으나 함께 있음으로 해서 그의 일생을 망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몬손과 함께 이곳을 떠나 그를 의무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려 했던 것이다'가 카튜샤의 의사에 대한 정확한 진술일 것이다.


톨스토이는 구원받기 위한 유일한 길에서 속죄를 강조한다. '네흘류도프는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악에서 구원받기 위한 유일한 길은, 하느님 앞에서 언제나 자신을 죄인으로 알고 자기가 남을 벌주고 선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있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소설 끝에서 마태복음을 인용한다. 아마도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적 사랑이 구원의 길임을 제시하는 것 같다. 


3. 사족

톨스토이는 묻는다. 2016년 대한민국 사법은 최선입니까?

재심사건이 더러 개시되는 걸 보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고 함이 솔직한 답변일 것이다. 


                      2016. 11. 20.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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