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페스트를 다시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6. 6. 20. 20:53

1. 개괄

1997. 1. 5. 읽었던 페스트를 다시 읽었다. 당시 "내용이 어려웠다"라고 책 끝에 소감을 적은 바 있다. 새로운 책을 고르기도 힘들고, 메르스 사태를 겪은 바도 있으므로 다시 읽게 되었다. 

알베르 카뮈는 1913년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태어났고, 1947년 이 작품을 출간하였으며, 1960년 사망하였다. 그는 <반항적 인간>에서 '나는 마르크스에게서 자유를 배우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가난 속에서 자유를 배웠다'고 말한 바 있다.


2. 발췌 

이 기록의 주제가 되는 이상한 사건들은, 194x년 오랑에서 일어났다. 일반적인 의견으로는, 보통 경우에서 좀 벗어나는 사건치고는, 그 장소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이 서른에 병색이 뚜렷한 아내의 얼굴이 리외에게는 그래도 여전히 젊은 시절의 얼굴로 보였다. 아마 다른 것을 전부 쫓아버리는 그 웃은 모습 때문일지도 모른다.


리외는 언성을 높이지 않고 그런 것은 자기는 모르겠으나 자신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진저리를 치지만 그래도 인류에 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으며, 내딴에는 정의롭지 않은 것과 타협을 거부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대답했다.


이 세상에는 전쟁 만큼이나 페스트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페스트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전쟁이란 확실히 너무나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래 가지 말란 법은 없다. 어리석은 일이 항상 악착같다.


여러분이 그것을 페스트라고 부르건 전염성 열병이라고 부르건 그런 것은 거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반수가 죽는 것을 막아내는 일입니다.


그러나 시가 폐쇄되자 그들은 모두 독 안에 든 쥐가 되었으며, 거기서 그냥 견딜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 개인적인 감정이 처음 몇주일째부터 갑자기 모든 사람들의 감정이 되었고, 공포와 더불어 그 오랜 격리생활의 중요한 고통거리가 되었다.


모든 역사의 태초부터 신의 재난은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을 그 발 아래에 꿇어앉혔습니다. 이 점을 생각하시고 무릎을 꿇으시오(파늘루 신부)


그러나 이런 망할 놈의 병은! 걸리지 않은 사람까지도, 마음에 걸려 있단 말입니다.


선생님은 신을 믿으시나요? /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는 어둠 속에 있고, 거기서 밝게 보려고 애쓴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특이하게 보이지 않게 된 것이 벌써 오래 됩니다(리외)


그 점이 파늘루와 다른 점이 아닌가요? / 그렇지 않습니다. 파늘루는 학자입니다. 그는 사람이 죽는 것을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리 운운하고 있는 것이죠...그(시골신부)는 참변의 훌륭한 이유를 밝히기 전에 우선 치료부터 할 겁니다.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반성할 것이고, 또 나도 반성할 것입니다. 나는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들을 보호해줍니다. 그뿐이지요(타루).


그 모든 것을 누가 가르쳐주었나요, 선생님? / 가난입니다.


그런데 타루. 뭣 때문에 이런 일에 발벗고 나서는 겁니까? / 나는 모르죠. 아마 나의 도의감 때문인가봅니다.

그래 어떤 도의감인데요? /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세계의 악은 대개가 무지에서 오는 것이며, 또 선의도 총명한 지혜 없이는 악의와 마찬가지로 많은 피해를 입히는 수가 있는 법이다.


가장 구원받을 수 없는 악덕은 스스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사람을 죽이는 권리를 인정하는 따위의 무지의 악덕인 것이다. 살인자의 넋은 맹목이며, 가능한 한의 통찰력이 없고서는 참된 선도 아름다운 사랑도 없는 법이다.


랑베르는 페스트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페스트 난리 속에서 나는 더 좋은걸요(코타르)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이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은 파괴적인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살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죽는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그러나 리외는 똑바로 일어나 앉아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행복을 택하는 것이 부끄러울 게 무어냐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랑베르는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러나 오통 씨는 규칙은 누구에게나 오직 하나며, 그것에 복종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신부가 의사의 진찰을 받는다면 그것은 모순이라는 거죠.


나는 페스트 환자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뿐이죠.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사형 선고라는 기반 위에 서 있으니, 그것과 투쟁함으로써 살인 행위와 싸우겠다고 생각했어요(타루).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평화에 도달하기 위해서 걸어야 할 길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야 공감이라는 것이죠."


나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연대 책임을 느낍니다. 아마 나는 영웅주의라든가 덕성 같은 것에는 아마 취미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인간이 되겠다는 것입니다(리외)


물론 인간은 희생자를 위해 싸워야만 하죠. 그러나 다른 편에서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게 되고 만다면, 투쟁은 해서 뭣하겠어요?


페스트가 대체 뭡니까? 인생, 그뿐이죠.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으며..아마도 언젠가는 인간에게 불행과 교훈을 갖다주기 위해서, 페스트가 또다시 저 쥐들을 깨워 어떤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3. 소감

페스트가 발병하고 시가 폐쇄되자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리외 같이 묵묵하게 페스트틀 진단하고 격리를 지시하는 사람, 코타르 같이 밀수를 하여 돈을 버는 사람, 타루같이 도덕심에 기초하여 의료자원봉사대를 조직하는 사람, 파늘루신부 같이 먼저 반성할 것을 주문하는 사람......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랑베르기자다. 부정행위를 해서 시를 탈출하려다가 리외가 사랑하는 아내와 별거하면서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것을 알고 탈출을 단념하고 의료자원봉사대에 참여한다.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게 그의 대답이다. 

페스트가 발병하고 시가 폐쇄되자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때로는 페스트를 부인하려 하지만, 리외는 의사로서 병의 위력 앞에 회의와 무기력에 빠지기도 하지만 묵묵하게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리외다.


                  2016. 6. 20.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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