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카라마조프형제들을 다시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6. 12. 11. 18:15

1.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소설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다시 읽었다. 7년만이다.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에겐 세 아들 어쩌면 네 아들이 있다. 첫째 미차 둘째 이반 셋째 알료사다. 어쩌면 표도르씨집의 하인으로 일하는 스메르차코프는 표도르씨와 떠돌이여자 리자베타 사이에 난 사생아일지 모른다.

첫째 아들은 퇴역 육군 중위고 어머니의 유산문제로 아버지 표도르와 늘 대립하다가 그루센카라는 정숙하지 못한 여인을 놓고 아버지와 추악한 쟁탈전을 벌인다. 둘째 아들은 뛰어난 지성과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무신론자로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이론을 가지고 있다. 결국 미친다. 셋째 아들은 존경받는 조시마장로에게 인정받는 수도사로서 천사 같은 인물이다. 스메르자코프는 이반이 가지고 있는 위와 같은 이론의 맹목적인 행동주의자다. 

 

이 소설에는 재판장면이 비중있게 등장한다. 표도르씨를 살해하고 3천 루블을 강탈한 죄로 미차가 기소된다. 수많은 물증과 증언이 제시된다. 검사 이폴리트의 논고와 변호사 페추코비치의 변론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결국 오판을 한다. 독자들은 오판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스메르자코프가 이반에게 자신이 표도르씨를 죽였음을 고백하고, 강탈한 3천 루블을 건넨다. 그리고 자살한다. 이반은 미차에 대한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하여 스메르자코프가 진범이고, 그에게서 받은 3천 루블을 제시하나, 유죄의 증거들을 이기지 못한다. 왜 오판을 하였을까?


2. 오판의 원인

첫째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엄격한 증명이 있어야 유죄가 인정된다는 원칙이 제시되지 않았고, 배심원들에게 설명되지도 않았다. 

우선 미차에게는 강탈했다는 3,000 루블 중 1,500 루블이 발견되지 않았다. 스메르자코프가 미차에 대한 공판 직전에 이반에게 범행을 고백하고 3천 루블까지 건넸고 이반이 법정에서 이와 같은 취지로 증언을 하였다. 아버지를 살해하였다는 미차가 직후 애인 그루센카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잔치를 벌인다. 이런 점들은 미차가 진범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성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이러한 점이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둘째로 물증들과 증언이 무수히 제시된다.

미차가 약혼자 카체리나에게 범행 이틀 전에 써서 보낸 편지가 제시된다. 거기에는 아버지가 그 다음날 돈을 주지 않을 때는 '이반이 출발하는 대로 곧' 그를 죽이고 '장미빛 리본으로 묶은 봉투에 들어 있는' 그 돈을 베개 밑에서 꺼내겠다고 되어 있다. 카체리나는 첫 증언에서는 미차에게 우호적인 증언을 하나, 이반이 스메르자코프가 진범이라는 증언을 하자 이반을 구할 생각으로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위 편지를 법정에 제출한다. 범행 무렵 표도르씨의 정원에서 미차가 하인 그레고리의 머리를 절굿공이로 내려친 점이 입증된다. 더욱이 그레고리는 당시 표도르씨가 있던 방의 문이 열려 있었다고 기억한다는 취지의 증언을 한다. 이는 진실에 반하나, 반증에 의해 탄핵되지 못한다. 그레고리는 '본 것이 아니라 다만 본 것처럼 느꼈을 뿐인데, 한번 그렇다고 우기기 시작하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세째로 진범에 대한 수사가 부실했다.

범인으로 지목될 수 있는 사람은 애초 미차와 스메르자코프였다. 그런데 스메르자코프는 범행 당시 간질 발작이 일어난 것으로 위장을 하는데 이를 검사와 예심판사는 깊게 의심하지 않는다. 표도르씨의 돈 봉투 위치를 아는 사람도, 표도르씨의 방문을 여는 신호를 아는 사람도 스메르차코프였고, 이는 스메르차코프의 진술에 의해서도 충분히 입증되며, 미차도 수사 초기부터 그 점을 지적하는데, 수사기관은 스메르차코프의 함정에 쉽게 빠지고 만다. 아마도 미차는 드러난 게 많고, 스메르자코프는 드러난게 적었으므로 수사기관이 현혹된 게 아닐까?. 스메르자코프를 의심했다면 3천 루블의 존재를 찾았을 터이고, 그랬다면 진범을 찾았을 지도 모른다.


넷째로 미차가 수사 초기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한다.

미차는 공판을 앞두고 유명한 변호사를 선임하지만, 수사 초기에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한다. 수사 초기 미차는 숙고하지 못한 진술,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비유 같은 말) 을 하게 되고 이는 유죄의 의심을 가중시킨다. 미차의 진술은 멍청하게 보였다. 작가는 이반의 악몽 속에 '유감스럽지만 진실은 거의 모든 경우 멍청하게 보이거든' 라는 대사를 넣어둔다.


다음과 같은 구절은 심판자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경종을 울리려고 작가가 넣어둔 말이다.

'인간은 어느 누구의 심판자도 될 수 없다는 것을 특히 명심하라. 왜냐하면 심판자 자신이, 자기도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사람과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 아니 자기야말로 이 사람의 범죄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더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는 한 이 지상에 죄인의 심판자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심판자가 될 수 있다. 엎핏 생각하기에는 이치에 닿지 않는 말 같지만,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이다. 만약 나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었다면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죄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는지 모르는 일이다. 그대 앞에 서서, 그대의 뜻대로 심판받게 될 죄인의 죄를 스스로 자신이 걸머질 수만 있다면 지체없이 그것을 실천하여 그를 위해 고통을 받을 것이며, 죄인에게는 아무런 책망도 하지 말고 용서하도록 하라. 비록 국법에 따라 심판을 받은 경우라도, 사정이 허락하는 한 이런 정신 밑에서 행동하라. 그렇게 하면 죄인은 심판대에서 풀려나온 뒤, 그대의 심판보다 더욱 가혹하게 자기 자신을 심판할 것이다.'


3. 도스토예프스키

이 소설은 1881년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은 해에 출간되었고, 성격묘사에서 새로운 다양성을 가져왔다. 미차의 약혼자이지만 미차에게 버림 받고 이반을 사랑하는 카체리나가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하여 처녀의 몸으로 거금을 빌리러 미차를 찾아가는 카체리나. 미차의 선행에 보답하기 위하여 약혼하는 카체리나. '그녀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선행을 사랑하고 있는거야'라는 미차의 진술도 있고,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그이의 영혼을 구해 주고 싶어요. 내가 약혼녀라는 것 따위는 잊어 주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카체리나의 진술이 나온다. 마지막에 미차에 대한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당시 사랑하고 있는 이반을 구하기 위하여 미차에게 불리한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였다는 점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미차는 러시아 사람을 대표하여 묘사한게 아닌가 싶다. '그에게서는 우리의 러시아, 즉 어머니인 러시아가 느껴집니다. 러시아의 체취가, 러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네, 분명히 그는 솔직합니다. 그의 내부에는 선과 악이 놀라운 형태로 뒤섞여 있습니다. 그는 문명과 실러를 애호하면서도 술집마다 쏘다니며, 주정뱅이 술친구들의 수염을 뜯고 있습니다....'


이반은 마지막에 미치는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작가의 그에 대한 태도를 드러낸다. 


결국 작가는 알료사에게서 러시아의 미래를 본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에 알료사는 어린 나이에 죽은 일류사의 장례식에서 소년들과 함께 '우리는 반드시 부활하여 서로 다시 만나 유쾌하고 즐겁게 옛날 일은 얘기하게 될 거야'라고 말한다.


2016. 12. 11. 부산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좋으냐? 톨스토이가 좋으냐? 쉽게 말할 수 없는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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