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엄기호의 <단속사회>를 읽었다. 저자는 사회학자다. 이 책은 "지금 우리 곁에는 말을 듣는 사람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자기 말을 들어달라는 사람만 가득하다"고 문제제기를 한다. 저자는 단속이라는 말로 한국사회가 '사회가 아닌 상태의 사회'라는 그 역설을 드러낸다. 여기서 단속이라는 말은 네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1) 낯선 것과의 만남의 단절 (2) 공적인 것과의 단속 (3) 이런 의견을 아예 제시하지 않거나 불가피한 경우에만 최소한으로 드러내기 위해 자기검열 혹은 스스로를 단속(團束)하는 경향으로서의 단속 (4) 이런 결과로 나타나는 '연속의 반대'로서의 단속(斷續)이다.
2. 발췌
이렇게 '편'을 강요하는 언어에는 반성이나 성찰이 들어설 여지가 전혀 없다.
정수 씨는 관계에 지쳐 있었다. 그는 자신이 무기력과 소진 사이를 '미친년 널뛰듯이' 왕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의 최고봉은 무엇을 할 자유가 아니라 '함'으로부터 물러설 수 있는 자유다. 이 쉼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만들 수 있다.
벤야민은 '정보'와 '이야기'를 철저히 구분한다.
정치가 가십이 되는 것을 넘어 가십이 정치가 된다. 지금의 폭로가 주로 도덕과 관련된 사안에 집중되거나 혹은 개인 윤리의 차원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바로 이유에서다.
신자유주의로 전화되는 과정에서 국가의 가장 주된 임무가 '시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국가는 자신의 정당성의 근거를 경제적 영역이 아니라 비경제적 영역에서 다시 찾아야 했고 '안전'을 통해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해 동일성에만 숨어들게 되면서 우리의 경험은 축소되고 성장의 기회는 봉쇄된다. 이것이 사냥꾼의 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한 안전의 댓가다.
인간관계는 더 이상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바우만의 말처럼 "사적인 문제들에 대해 사회적인 해결책을 기대하기보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 사적인 해결책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왜? 라는 질문은 인간이 남이 시키는 대로 그저 따르지 않고 제 주관을 갖고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존 듀이에 따르면 능동성과 수동성이 합해질 때 비로소 경험은 경험으로서 가치를 얻게 되고 의미가 발생한다.
자기가 선택한 것처럼 보였던 많은 것조차도 사실은 '선택'이라는 이름의 강요였다. 진정한 자유는 그와는 반대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물러서는 것에서 나온다.
사회발전의 이면에는 그 '발전'이 만들어내는 위험을 고스란히 떠맡는 사람들이 있다. 노동경제학자 류동민의 말을 빌리면 이익은 위로 가고 위험은 아래로 분배되는 것이 이 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다.
'내가 남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만날 때 비로소 내가 되는 것'이다. 타자를 보고 느끼고, 타자를 통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일체의 과정을 우리는 소통이라고 부를 수 있다.....소통이란 서로의 차이 안에서 공통의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듀이가 말한 "의사소통은 경험이 공동소유가 될 때까지 경험에 참여하는 과정"이 가리키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배움을 통한 성장은 기존의 질서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던 질서를 발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류명걸은 "사회는 전수에 '의해서', 의사소통에 '의해서' 존속할 뿐만 아니라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수 '속에서', 의사소통 '속에서' 존속한다고 말하 수 있다"고 단언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평등이란 "공동의 세계에서 동등한 파트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장소에 귀속되고 그 장소에 대해 책임감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만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말이다.
바우만은 서구 복지국가의 사례를 들어 근대의 국가가 하는 일이 잉여 배제 폐기 같은 삶의 불확실성에 맞서 시민들을 보호하고 삶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경청은 우정의 소산이다. 평등한 자들만이 우정을 나눌 수 있다.
고통에 귀 기울이고 말을 거는 행위인 경청은 배제의 정치, 수의 정치에 맞서는 삶의 정치가 된다.
부버는 만남이란 나-그것 이라는 비인격적 관계가 우위를 차지하는 기계화시대에 나-너라는 인격적 만남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3. 소감
讀書萬券 行萬里路라는 청나라 학자 고염무의 말은 이 책에서도 인용되고 있다. 나의 목표는 1/3쯤 달성한 것 같다.
2014. 5. 10.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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