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한국고문서학회가 지은 <조선의 일상, 법정에 서다>를 읽었다. 한국고문서학회는 고문서의 체계적인 연구와 수집 보전을 위해 1991년 4월에 창립되었다. 이 책은 고문서를 중심으로 실록, 일기, 문집 등 관련 자료를 섭렵하여 조선시대 소송사례를 발굴하고, 경제생활, 신분사회, 공동체 및 국가로 분류하여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였다.
2. 발췌
조선 초기 위정자들은 분쟁과 소송의 폭주를 고려 멸망의 원인 중 하나로 인식했다. 그 때문에 조선 초기부터 공자가 말한 무송 사회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끝임없이 노력했다.
<경국대전><형전>에는 노비결송정한이라는 부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이름 그대로 특정 사안에 관련된 노비 소송의 경우 일정 시기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소송의 수리를 금지한 것이다. 또한 <호전> 전택 조에서는 5년이 지난 사건의 수리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는데, 이를 청송기한 또는 정소 기한이라고 한다.
백성이 수령 등에게 재판을 요청하는 문서를 소지라고 하는데, 신청하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그 형식이 달랐다.
소송기기간이 늘어져 한 해 농사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추분 이후 춘분 이전에만 재판을 열었는데, 이를 무개 또는 무정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피고를 척이라고 일컬었는데, 척은 바로 원수이다. 재판을 거치면서 친한 사이는 원수 사이로 그 관계가 돌변해버린다.
당시에는 이런 원님이 법관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아니, 어쩌면 법관으로서 맡는 소송 처리가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정정당당히 소송을 하겠습니다. 원고와 피고 가운데 30일간 까닭 없이 소송에 임하지 않거든 법에 따라 판결하십시오" 송정에 나온 원척은 위와 같은 다짐을 하고서 소송을 진행한다. 이를 사송다짐이라 한다.
원척의 변론과 증거 제출이 완료되면, 양 당사자는 "저희들의 소송에 대하여 그날그날의 다짐을 상고해서 법에 따라 처분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판결을 신청한다. 이를 결송다짐이라 하는데, 지금으로 치면 변론 종결이라 할 수 있다.
억울한 판결이라고 생각되면 소송인은 수령이 교체되기를 기다려 3년 안에 다시 소송을 제기하거나, 아니면 감영에 바로 의송할 수 있었다.
대간이 곧 법관의 구실까지 함으로써 나타나는 폐해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도 지적했던 바였다. 실학자들은 대간이 죄인의 죄에 대한 참과 거짓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억측으로만 생살을 임의로 결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하였다.
조선시대 양반 남성은 자신의 여종과 관계를 맺어 자녀를 낳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나마 그 자녀를 속량시켜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본처 소생의 자녀와 주종관계가 형성되었다. 즉 적자녀가 얼자녀를 노비로 부렸는데, 이를 골육상잔이라고 한다.
윤씨가의 소송처럼 분묘와 관련된 산송은 노비 소송, 전답 소송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3대 소송이었다.
3. 소감
예나 지금이나 송사는 힘들다. 재판을 한 날은 집에 와서 말도 하기 싫다. 오늘처럼...
2014. 5. 1. 창원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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