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4. 5. 5. 20:19

1. 개괄

노명우의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읽었다. 저자는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이 책은 한 사회학자의 세상 경험에 대한 자전적 기록이자, 자기도 모른 채 세속의 사회학자였던 세상 사람들의 경험이 하나로 묶이는 공간이라고 한다. 상식, 이웃, 노동 등 25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책 이야기, 세상이야기를 담고 있다.

 

2. 발췌

좋은 삶은 한편으론 영리하되 영악하지 않은 지혜로움을 구하고, 다른 한편으론 선함이 지나쳐 주어진 모든 것들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무비판적 태도와 거리를 둘 때 가능하다.

 

막스 베버의 <경제와 사회>는 심오한 고전이다. 그 속에는 근대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적 원리인 합리화에 대한 베버의 통찰이 가득 담겨 있다. 합리화는 근대의 특징들을 낳은 거대한 전환의 과정이다.

 

타르드는 군중이 서로 시사적인 이슈에 대한 공동의 관심으로 연결되고 그로 인해 여론이 형성될 때 公衆으로 변화함을 발견했다.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죽은 사람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는 부질없는 명예에 불과하다. 유일한 구원의 가능성은 그들을 영웅으로 추대하는 요란한 소동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에 대한 기억에 있다.

 

다이옥신과 전자파가 유발하는 위험은 "부의 사회적 생산에 위험의 사회적 생산이 체계적으로 수반되는" 근대화된 사회에서만 발생한다. 위험은 고도로 발달된 기술을 먹고 자란다.

 

위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통제와 예측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위험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위험은 발생하고 난 후에야 가시화된다.

 

근대화가 위험을 만들었다면, 위험의 생산자인 근대화의 원리로부터의 탈출구는 위험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에 있다....<위험사회>가 제시하는 해법은 공포의 조장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로 위험의 인식을 방해하는 관료제를 교정하는 것이다.

 

경향신문 취재팀이 발로 뛰어 밝혀낸 자료에 따르면, "세입지와 주택 보유자를 불문하고 우리나라는 인구의 19퍼센트가 매해 이사를 다닌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명예는 승자가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 되고, 승리하지 못한 자에겐 명예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조건도 제공되지 않는다.

 

"사회가 앓는 병은 불가피하게 개인들도 겪는다. 사회는 전체이기 때문에 사회의 병은 각 부분에 전염된다" 이러한 뒤르켐의 인식은 놀랍게도 라이트 밀스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뒤르켐의 <자살론>이 출간된 지 아주 한참 후인 1959년 미국의 사회학자 라이트 밀스는 개인의 불행에서 시대의 불행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혼자 피우는 게으름은 패악이지만, 사회가 허용하는 게으름은 사람의 목숨까지 살린다오. 일하다가 죽는 과로사를 조장하는 개미들의 사회가 정상이라 할 수 있나요? "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평화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투쟁에 나선 까닭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얻고 그를 통해 자긍심을 획득하지만, 무시에 의해 자긍심이 훼손되었을 때는 투쟁하는 끊임없는 '인정투쟁'의 과정이다.

 

개인의 권리를 양도받은 국가가 국가에 귀속된 과대한 권리는 당연하고, 개인은 국가에 대해 의무만 지는 개체라고 주장한다면, 그때부터 국가는 정당성을 상실한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누구든 자신의 부모를 극복하지 못하면, 성인이 될 수 없다.

 

칸트는 계몽이란 '미성숙 상태'에서 벗어나 '성숙한 인간'으로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칸트는 성숙한 인간으로의 완성가능성을 배움에서 찾았다.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 것과 같고, 한 생명을 파괴한 자는 전 세계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탈무드)

 

나는 책 속에서는 생각했지만, 세속 속에서 "내가 생각"하지는 못했다. 어느새 책이 없으면 생각하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해 있던 것이다.

 

3. 소감

세상물정을 알고 세상물정에 빠지지 않을 것....

 

   2014. 5. 5.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