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절망의 재판소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4. 8. 7. 17:31

1. 개괄

세기 히로시가 쓴 <절망의 재판소>를 읽었다. 저자는 도쿄대학 법학부 재학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도쿄 지방재판소 재판장, 최고재판소 조사관, 최고재판소 사무총국 국원으로 근무한 바 있고, 33년의 법원생활을 끝내고 현재 메이지대학 법과대학원 전임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판사 재직 중 세키네 마키히코라는 필명으로 문학, 음악, 영화, 만화에 관한 책을 쓴 것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은 일본 재판소와 재판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2. 발췌

재판의 목적이란 대체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해서 '큰 정의'와 '작은 정의' 모두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단적으로 말해서 일본의 재판소, 재판관의 관심은 '사건처리'에만 집중되어 있다.

다시 말해 다수파, 중간층의 관료화 관리화 경향이 눈에 띈다. 원래부터 소수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정한 수는 늘 존재했던 학자 타입도 거의 자취를 감춰, 적어도 나 이후로는 학계에 알려진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2000년대 이후 다수의 재판관들이 하고 있는 것은 재판이라기보다 '사건'의 '처리'다. 또한 그들 스스로도 재판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재판하는 관료, 공무원' '법복을 입은 공무원'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본질에 더 가깝다.

최고재판소 판사의 출신에 따른 기본 틀은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어서 요즘은 재판관 6명, 변호사 4명, 검찰관 2명, 행정관료 2명(이 가운데 1명은 외교관인 경우가 많다), 법학자 1명으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이론을 용납하지 않는 일종의 전체주의 체제로 나처럼 단순한 자유주의자에 지나지 않는 사람조차 만약 어떤 일에 대해서 공식 견해와 다른 의견을 품는다면 그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는 체제인 것이다.

일본 재판소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틀림없이 사무총국 중심체제와 거기에 기반을 둔 상명하복, 상의하달의 피라미드형 히에라르키일 것이다.

 

이른바 '태초에 결론이 있었다'는 식의 논의인데, 법이론에 있어서 난해한 용어를 사용하고 또 교묘하게 조합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에 의외로 법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일반 시민을 속이기에는 꽤나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한 법이론의 결함을 꿰뚫어보기 위해서는 그것을 정확하고 간결하게 요약함과 동시에 일상적인 말로 옮겨 적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철든 이후 50년 동안 보아온 일본 사회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적어도 지금은 국민과 시민에 비해 관료나 정치인의 성숙도가 너무 낮으며, 따라서 사법의 적극성이 발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재판관의 판결문은 길고 상세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우며 중요한 쟁점에 관한 기술이 부실하거나 형식논리에 빠져 냉담하게 처리하는 것이 많다. 인정사실과 법리의 연결고리가 애매하며 판단의 방향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이는 지금의 법학교육에도 문제가 많지만 근본적으로는 사안을 진지하게 대하겠다는 재판관의 마음가짐이 부족하며, 또 당사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급심에 보이기 위해, 혹은 자기만족을 위해 판결문을 쓰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와 사회의 흐름이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 때, 거기에 제동을 걸어 국민과 시만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사법의 기본적 역할 중 하나를 일본의 재판소, 재판관에게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일본 형사사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이 철저하게 사회 방위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또 철저하게 검찰관 주도여서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에 억울한 죄를 낳기 쉬운 구조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반 일리치의 관료주의는 한마디로 말해서, '사태를 직시하지 않고 사물의 본질을 비껴 지나가는' 그 삶의 방식에 있다.

 

3. 소감

저자는 이 책 말미에 법과대학원 구상 이후부터는 한국이 일본보다 그 제도를 더욱 성공시켰다고 평가한다. 법조일원화제도의 채용과 도입을 염두에 둔 사법의 민주화, 성숙을 향한 제도개혁을 착실히 성공시켜 그런 점에서 있어서는 일본을 추월해나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시대와 사회의 흐름이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때 거기에 제동을 걸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것이 사법의 기본역할임을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에 따를 경우 '튀는 판결'은 사법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법이 존재함을 가리키는 지표가 될 것이다.

 

과연 한민국 법원과 법관은 제대로 나아가고 있을까?

                 2014. 8. 7.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