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김호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를 읽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책은 <欽欽新書>를 토대로 다산 정약용의 정의론을 다루고 있다. 다산은 범죄를 처벌할 때는 융통성을 발휘하고 재량껏 판결하되, 원칙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시의적절한 태도를 유지하는 時中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 이름을 欽欽이라 한 까닭은 삼가고 삼가는 일이야말로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2. 발췌
다산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소송 사건을 '뿌리를 남겨둔 채 베어낸 풀'에 비유했다. "풀을 베되 뿌리를 남겨두면 해마다 다시 살아나는 법이다. 한 가지 사건에 대해 소송이 끊이지 않게 됨으로써 결국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사대부가 법률서를 읽지 않아 백성에게 해독을 끼침이 이와 같으니, 시나 지으면서 음풍농월하고 노름하는 일을 어찌 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주변의 아내 안씨는 시골의 어리석은 부인으로서, 남편이 죽으면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말만 듣고 이 일이 복수할 만한 일이 아니란 사실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러니 안씨의 살인을 무죄로 판결한다면, 이후 뛰따를 폐단이 끝이 없을 것이다. 윤리를 손상하는 그릇된 의리를 법으로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산은 처벌의 대원칙으로 '고의로 저지른 죄라면 아무리 작은 죄라도 반드시 처벌하여 용서하지 아니 하고, 과실이라면 아무리 큰 죄라도 너그럽게 용서해야 한다'라는 것을 강조했다.
'법은 그 마음을 처벌한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도 이해하지 못한 채, 고의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고 죽은 이가 몇 명인지 독살인지 아닌지 등 과실과 전혀 무관한 사항을 고려한 청나라 형부의 실수도 빠뜨리지 않고 지적했다.
獄이야말로 이승의 지옥(목민심서)
허위로 고발한 경우에는 고발당한 사람이 받은 죄보다 2등급이나 3등급을 높여 가중처벌(대명률)
1785년 7월 사건이 발생한 지 무려 3년이 지난 뒤 정조는 마지막 판결을 내렸다. 정조는 오랫동안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증인과 증거들이 믿기 어려우므로 일단 의심스러우면 가볍게 처벌한다는 '罪疑惟輕'의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최수진을 사형 대신 유배형에 처한 것이다.
다산은 범인을 처벌할 생각만 할 뿐 죽음의 원인을 다양하고 세밀하게 확인하지 못한 세태를 비판했다. 가해자를 처벌할 생각에 구타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사고사의 가능성은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관리들을 질타한 것이다.
다산은 수령이 사적인 감정으로 사람을 죽였다면, 그 사람의 자식은 부모를 위해 수령에게 복수할 수 있다고 보았다.
비록 몸에 상처를 입히지 않았더라도 범행이 지극히 흉악하면 마땅히 살인으로 판단해야 하고, 비록 열 명의 목숨이 동시에 떨어졌다 해도 그 범행이 무겁지 않으면 사형에 처해서는 안 된다. 단지 죄의 경중만을 논하면 되지 어찌하여 죽은 사람이 많고 적음을 따져 판결하는가
그는 도덕적 판단의 과잉으로 법 집행에 흠집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다산은 이미 조선의 법전이 너무도 도덕화되었다고 생각했다.
인의예지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인의예지가 씨앗처럼 사람의 마음 속에 먼저 들어가 있을 수 있겠는가?
사건 판결은 천하의 저울과 같다. 죄수를 미워해 죽일 길을 찾아도 형평이 아니며, 죄수를 위해 살릴 길만을 찾아도 형평은 아니다. 그럼에도 죄수가 살 길을 찾고 죽을 길을 찾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진실로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으므로, 살려놓고서 죽일 바를 찾더라도 오히려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형사사건을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죄수를 살릴 방도를 찾아야 한다
3. 소감
<맹자><진심>장에는 맹자가 제자 도응으로부터, 순 임금의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을 경우 법관 고요가 법을 집행할 수 있는지, 또 살인자를 사형에 처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고 권력자인 순 임금은 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질문을 받고, 법관 고요는 늘 그랬던 것처럼 법을 집행해야 하고 순 임금은 나라를 버리고 아버지와 함께 도망쳐 효를 다해야 한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온다. 이에 대하여 다산은 군신간의 의리와 부자간의 도리를 깊이 생각한다면, 법 집행을 할 수 없다고 보았다. 즉 순 임금은 법을 굽혀야 한다고 답했다. 무조건 법 앞의 평등보다는 극소수의 예외를 인정한 뒤의 평등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산의 한계를 지적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흠신서는 지금의 판사들에게 많을 것을 가르치고 있다.
2014. 5. 28. 창원에서 자작나무
'독서일기(정치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망의 재판소를 읽고 (0) | 2014.08.07 |
---|---|
지식인을 읽고 (0) | 2014.06.15 |
윤태영의 기록을 읽고 (0) | 2014.05.15 |
단속사회를 읽고 (0) | 2014.05.10 |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읽고 (0) | 2014.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