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책에대한 책)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3. 20. 09:46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읽었다. 저자는 연세대에서 '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48가지 철학 주제를 놓고 이에 관한 책을 소개하고 저자의 해석을 덧붙이는 방식을 취한다. 감동적으로 읽은 부분은 다음과 같다.

 

솔직함과 정직함은 내가 만난 시인을 포함한 모든 인문정신의 핵심에 놓여 있다.

 

이제 라캉이 말한 욕망의 공식, 혹은 환상의 공식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우리는 금지된 것만을 욕망한다.

 

결국 생각과 존재의 불일치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신에게 각인된 금지를 극복해야만 한다.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 다른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 충동, 욕구, 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는 것들은 육체, 소유물, 평판, 지위,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지 않는 모든 일이다(에픽테토스)

 

니체는 말한다. 우리 정신은 세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는 낙타로 비유되는 정신이다. 아무런 반성 없이 일체의 사회적 관습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정신이다.

두 번째는 사자로 비유되는 정신이다. 사자의 정신은 일체의 억압을 부정하는 자유정신을 상징한다.

세 번째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아이의 정신이다. 니체의 아이는 솔직함과 당당함을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과거를 맹목적으로 답습하기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그것은 돈을 잃어버린 날,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날, 우리는 기억에 사로잡혀 타자의 소리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집착에 빠지면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내 앞의 타자에 대해 신경을 쓸수 있는 여유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말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만 한다(비트겐슈타인)

 

변화가 지나가버린 것이라면, 습관은 그것을 낳은 변화를 넘어서 존속하는 것이다(라베송)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낯섬이 찾아오는 바로 그 순간이 우리의 생각이 깨어나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하이데거를 통해서 이제 우리는 자신이 항상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도종환 인 / '가구')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비트겐슈타인) / 윤리적인 것, 종교적인 것, 그리고 개인적인 취향과 같은 인간 내면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 아직 죽음은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에피쿠로스)

 

음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현자는 단순히 긴 삶이 아니라, 가장 즐거운 삶을 원한다. 그래서 그는 가장 긴 시간이 아니라 가장 즐거운 시간을 향유하려고 노력한다(에피쿠로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있을 수 없다.

 

아이히만(나치 전범)으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였다.......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아렌트) / 아렌트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라고 강조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 그렇지만 그것이 진정한 선물이 되기 위해서는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 일체의 대가 없이 네가 가진 것을 주어야만 한다.....수확의 기대 없이 심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데리다)

 

데리다가 이성을 포함한 모든 중심을 해체한 이유는 인간 모두에게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중심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중심은 하나가 아니라 인간의 수만큼 존재한다.

 

소통은 구체적으로 막혔던 것을 터서 물과 같은 것을 잘 흐르도록 하는 작용을 나타내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이라는 개념보다 소라는 개념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막혔던 것을 터버리지 않는다면, 물과 같은 것이 흐를 수 없다.

 

논리적인 논증만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우리는 공자가 위대했던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논리를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수사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논리적 사유란 타자를 폭력이 아닌 평화스러운 방법으로 설득하려는 의지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기계적으로 보이지만, 논리적 사유는 타자를 대화 상대자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연한 것,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생동적인 것에 반대되는 경직된 것, 기성적인 것 그리고 집중에 반대되는 방심, 요약하자면 자유스러운 활동성에 대립되는 자동주의, 이것이 웃음이 강조하고 교정하려고 하는 결점이다(베르그송의 <웃음> 중)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벤야민)

 

산업자본은 기본적으로 시간적 차이, 유행을 만들면서 이윤을 얻는 체계이다. 이 점에서 산업자본은 미리 주어진 공간적 차이를 이용하여 이윤을 얻으려는 상업자본과는 질적으로 다른 논리로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좀바르트는 자본주의 발달의 비밀을 생산이 아니라 소비 즉, 사치에서 찾았다.

 

금기가 없다면 에로티즘도 없다(바타유)

 

한비자는 德은 得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덕은 단순히 도덕적 품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에 빠진 사람이 언제나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니까 가난한 것이다.

 

하위징아에 따르면 노동은 수단과 목적이 분리된 것이고 놀이는 수단과 목적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참다운 여행은 배움의 과정이어야 한다. 첫 번째 배움은 여행지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배우는 것이다. 두 번째 여행지에서 삶이 충분히 편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이 떠나온 일상이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인문학의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2011. 3. 20. 진주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