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김진석 <더러운 철학>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0. 3. 6. 12:40

인하대학교 철학과 김진석 교수님이 쓴 <더러운 철학>을 읽었다. '철학, 더러움에 빠지고 더러움을 무릅쓰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저자는 좌파, 우파 논쟁에서 한 걸음 발전하여 현 상황에서는 자유주의적 개입과 설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인상 깊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기만과 사기의 문제는 그래서 매우 심각하다. 그것이 나빠서 그런 것만도 아니고, 나쁜 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벌을 받아서 그런 것만도 아니다. 법은 그것을 해결하지 못한다. 법조차도 그것을 겨우 관리할 뿐이다.

 

현실정치가 더럽다는 것을 사람들은 대부분 알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정치 바깥에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행위와 활동도 따지고 보면 그것 못지않게 정치적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현실정치는 더럽지만, 그것이 더럽다는 것이 뻔히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곧 그것이 권력관계의 뻔뻔한 극단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최소한 위선적이지는 않다.

 

실제로는 사교를 하고 인맥을 쌓는 일에 열중하면서도, 자신은 정치 바깥에 있고 또 자신들의 행위는 그저 인간적인 행위라고 믿는 사람들의 행위는 위선에 잘 빠진다.

 

객관성은 비교적 중립적인 대상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말이지, 모든 대상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다.

 

생태주의라는 실천적 대의에 동의하면서도, 나는 경쟁과 공존이 이처럼 전적인 대립과 배제 관계 속에 설정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서양이란 총체적 이념이 허구인 것처럼, 동양이란 총체적 이념도 허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우리는 이 둘 모두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해야 한다.

 

철학의 사회적 의미의 관점에서 나는 더 이상 성인이나 군자에 호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보통 시민에게 가능한 철학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有爲에 대해서는 오히려 조금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인간문화는 아마 처음부터 유위적 제도의 위험 속에서 시작되었다. 자연 상태가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못지않게 문화는 쓸데없는 행위의 가벼움 속에서, 혹은 안 해도 될 일을 하는 행위의 무모한 열정 속에서 영위되고 있는 것이다.

 

고전의 주해라는 동양철학의 원칙이 철학을 왜소하고 완고하게 만드는 데 크게 일조했다.

 

성서의 성스러운 말씀을 해석하는 자의 교부의 열정과 표정으로 그는 얼마든지 평범한 말일 수 있는 구절도 신성화한다. 사실 노자와 공자의 말 중에서 꽤 많은 부분은 그 시대 누구나 할 수 있었을 보통의 말이거나 진부한 수준의 말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해석적 태도에 가깝다.

 

격한 변화가 몰아칠수록 고전이 수행하는 안정적인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지므로, 또 좋은 의미의 보수의 가치는 언제든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고전에 대한 관심은 현재를 위한 성찰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저절로 현재를 재단하는 규범적이거나 입법적 가치를 획득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지배에서의 해방이 자유의 실천을 정의하는데 충분하지 못하다. 자기 배려의 윤리는 그 자체로 자유의 실천이다(푸코)

 

정치학적 고민은 비교적 주어진 사회 안에서 바람직한 정치적 조직이나 움직임을 설정하고 가동하려고 한다. 그와 달리, 철학 담론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다보니 자칫하면 근본주의적 변화 혹은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듯하다.

 

노마디즘도 더럽다고 보는 철학은 스스로 더러움을 무릅써야 한다.

 

우선 장기 지속성을 과도하게 설정하는 현재 한국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 설정과 개입이 필요하다. 자유주의는 비교적 다양하게 개체들의 자유와 선택을 보장하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유주의적 장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보수와 진보라는 경직된 대립을 완화하면서, 점점 흐름이 빨라지는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는 지금 '애매한 시민들의 촛불 후유증'에 톡톡히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툭하면 파시즘 운운하는 일은 시민들의 여러 필수적 책임에 대한 성찰을 건너뛴다.

 

개혁을 원하고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도 타자를 비난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들을 되돌아보고 성찰해야 한다.

 

정치조직이라면 마땅히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또 대중의 마음을 살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

 

현재의 대학진학률을 유지한 채 등록금 인하만을 주장하는 것은 공허하거나 무책임한 일일 수도 있다. 높은 대학진학률은 긍정적 역할 못지않게 부정적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옳은 말과 이념을 말하고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파시즘 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정작 부족하고 약했던 것은 좌파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유주의적 세력의 약화가 파시즘이 발호하는 데 큰 원인이었다는 연구가 있고, 나는 거기에 동의한다. 자유주의가 항상 무구한 것은 아니고 때로는 경제적 자유에 많은 무게를 싣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 사회에 매우 필요한 것은 자유주의적 관점이다.

 

촛불집회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그것을 만든 자발성과 다양성은 매우 칭찬받을 만하지만, 그것들을 정말 사회적으로 구체화하고 실현할 힘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이해되는 것은 이해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넘어가고 그렇게 다 읽었다. 저자의 깊은 사색과 고민이 돋보인다. 트위터를 하니 다 좋은데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해 고민이다.

 

         2010. 3. 6.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