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위치우위의 '천년의 정원'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9. 12. 5. 22:02

지인의 추천을 받아 위치우위의 <천년의 정원>을 읽었다. 지은이는 중국의 예술평론가,문화사학자로서 국가에 뛰어난 공헌을 한 학자로 선정된 바 있고, <중국문화답사기>라는 문화기행서를 쓴 바도 있다. 이 책은 '시대와 역사의 현장에서 나누는 중국 문명과의 대화'라는 부제에도 드러나듯 1992년부터 1994년까지 현장을 방문하여 그곳에 얽힌 역사와 문명을 기억하고 작가의 감상을 덧붙인 내용이다. 작가가 방문한 현장으로는 열하일기로 유명한 피서산장, 유배자의 땅 영고탑, 작가의 고향인 저장성 위야오, 소동파의 유배지 황저우, 저자가 천년의 정원이라 이름 붙인 악록서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과거제도의 장점과 단점을 역사의 발전 단계에 맞추어 설명하는 대목에 가서는 더 이상 의문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소인이 역사에서 어떻게 하였고,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21세기 '문제는 소인이다' 하는 대목에 이르면 숙연한 느낌마저 든다. 문화대혁명을 겪은 저자는 곳곳에서 문명의 힘, 문화의 전수를 이야기 한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이로써 오직 덕을 쌓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국토 수호의 유일한 방법임을 알 수 있다. 백성의 마음이 기쁘면 나라의 근본을 얻게 될 것이니, 변경이 절로 굳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리의 뜻이 모여 城을 이룬다"는 의미로다.

 

만약 저서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는 이가, 중원에서 태어난 군주는 덕을 쌓거나 인을 행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명분을 갖춘 것이고 외족의 군주는 설사 정성을 다하여 정치를 도모할지라도 결코 찬양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외족의 군주 또한 자신의 선한 마음이 절로 나태해질 것이니 이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중원의 백성 아니겠는가(청나라 옹정제)

 

50년 인생에 단 한 번 죽을 뿐이니, 이 세상의 변화를 겪으며 정의가 더 이상 모욕받지 않게 하리라(왕국유 선생이 청조의 변발을 한 채로 청조 황가 원림에 투신하며 남긴 유언)

무릇 하나의 문화가 쇠락할 때가 되면 그 문화와 함께 성장한 사람들은 반드시 고통을 느끼게 된다(진인각 선생)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것처럼 예술에는 아름다움과 추함이 있을 뿐이지, 옳고 그른 것은 존재하기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획대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시대를 초월한 문화의 명인일수록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그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소동파는 황저우를 완성했고 황저우 역시 소동파를 완성했다.....소동파와 황저우가 함께 향상되었다.

 

소동파는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여론과 비판은 정책 결정권을 가진 조정 관리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고 엄청난 정치적 살상력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고로 대범한 군주는 말 때문에 사람을 벌하지 않는다(왕안석 아우 왕안례가 왕안석 정적 소동파의 사면을 위하여 황제에게 직언하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성숙이란 재난을 당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소멸과 정적 이후의 재생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자 궁핍하고 편벽한 땅에서 주변에 더 이상 아무도 찾을 수 없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정원(악록서원)의 힘은 천년 동안 끈질기에 한 민족에게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린 데 있다......본래 악록서원은 천년의 자취를 통해 우리에게 교육이란 일종의 세대를 이어가며 쌓아올린 축적물이며, 민족성을 변화시키는 일이란 오랜 세월에 걸친 연마에 의해 가능한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세상에 살고 있는 나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바로 문화의 흡수, 문화의 전수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따금 혼자서 내 자신의 생명과 가치를 가늠해볼 때 나는 마음속 깊이 이렇게 가만히 외친다. 나의 선생님, 나의 학생들, 내가 바로 당신들이다!

 

그 꽃을 보기 전 꽃은 너와 더불어 적막 속에 침잠하였더니, 네가 그 꽃을 보러 오니 꽃의 색깔이 뚜렷해지더라(왕양명)

 

미국의 인류학자 모건은 몽매, 야만, 문명이라는 세 단계가 인류문화와 사회가 발전하는 보편적인 단계라고 말한 바 있다....역사적인 안목에서 볼 때 야만은 인간이 몽매를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이다.

 

남쪽 황무지에서 구사일생한 귀양살이 원망치 않으리니

이번 유람은 기이한 절경이 평생에 으뜸이었도다(소동파가 하이난 섬에서 3년 유배를 마치고)

 

여기에서 말하는 여성적 문명이란 문화 철학적 의미를 가진 상징적인 표현으로, 노자의 "부드러움을 귀히 여기고 암컷의 아름다움을 지킨다"는 주장과 관련이 있다.

 

이렇게 보면 관리를 선발하는 데 후천적인 자격을 중시하게 된 것은 일단 크게 진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政事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책론이든 시부든 모두 무용하다. 비록 그것이 무용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祖宗 이래로 폐지하지 않은 까닭은 과거시험으로 선비를 선발하는 것이 원래 그런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소동파)

 

영웅이 없으니 보잘것 없는 것들이 이름을 날리는구나!(완적)

 

다만 요절한 아름다운 생명에 대한 애도의 눈물이었을 뿐이다......그날 완적의 울음이 있었기에 수천년 중국에서 흘린 눈물과 숱한 곡성은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너무 사실적이며 또한 이기적인 울음이 되고 말았다.

 

위아래 모두 사건의 진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가장 세속적이고 금세 소문이 나며 사회적 분노를 쉽게 살 수 있는 죄명에 열중할 뿐이었다. 일단 죄명이 성립되면 사실의 진상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린다.

 

그들은 값진 생명을 대가로 처음으로 일종의 자각적인 문화적 인격을 보여주었다.

 

天長地久라 하여 그들이 하늘과 땅처럼 영원해야 한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일찍이 그들이 존재했노라고 말할 따름이다.

 

소인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한다.....소인은 반드시 유언비어로 분위기를 조장한다......소인은 최종적으로 대세를 파악하지 못한다.

 

법률로 소인들은 통제할 수는 없을까? 매우 힘든일이다. 소인들은 기본적으로 범법행위를 하지 않는다. 이 점은 더욱 가증할 만한 그들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소인 문제를 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강해져야 한다.......소인들은 아주 오랜 세월 우리를 얽어매고 있었다. 왜 우리는 대담하게 그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지 않는가?

20세기를 보내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중요한 사회적 명제에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소인들에 관한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주기 바란다.

그렇다! 문제는 소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2003년에 제1판 제1쇄가 발행되고 더 이상 수요가 없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이 책의 내용이 중국만의 것인가? 저자의 고민이 그만의 것인가? 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변하지 못하는 점이 더더욱 안타깝다.

 

                 2009. 12. 5.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