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한홍구의 '특강'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9. 6. 18. 20:27

한홍구의 한국현대사 이야기 '특강'을 읽었다. 저자는 진보성향 학자들의 산실인 성공회대학교의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한 바 있으며, 한겨레21에 5년간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기고한 바 있다.

이 책은 저자가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2008. 10. 13.부터 2008. 12. 1.까지 한국현대사를 주제로 강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은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 간첩이 돌아왔다, 토건족의 나라, 헌법정신과 민영화, 괴담의 사회사, 경찰 폭력의 역사, 사교육 공화국, 촛불이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우리 독립운동은 원래 사회주의 성격이 강해서라기보다 제국주의 침략세력이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세력이기 때문이죠. 그걸 반대하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반자본주의 정서가 강해졌습니다.

 

뉴라이트는 죽었다 깨어나도 민족을 내세우지 못합니다. 친일파가 어떻게 민족을 내세웁니까? 오로지 국가만을 내세울 수밖에 없죠.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은 어디서 따질 것이냐? 그 기준이 무엇이냐? 저는 그 기준은 두 가지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이고, 또 하나는 대한민국 제헌헌법입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제헌헌법 제18조).

 

빨치산이 나와서 병력을 동원할 때마다 밤낮 미국의 허락을 구할 수는 없으니까 전투경찰을 따로 만든겁니다.

 

조선의 과거제도는 제도적으로는 감짝  놀랄 만큼 열린 제도였어요.

 

전두환이 통치를 하려면 대중의 마음을 끌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래서 연구해낸 것이 바로 과외금지였습니다.

 

시대가 그랬던 것도 있지만 386의 급진화는 정말 가난한 학생들이 대학에 많이 입학했다는 게 요인으로 작용했어요.

 

저는 한국사회의 보수화를 이끌어나가는 요소로 과외보다 더 심한 게 없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두발문제든 무엇이든 학생들이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문제들, 적어도 "밤 좀 먹자, 잠 좀 자자"같은 문제들에 대해 학생들과 공유하고 함께 싸우면서 학생들의 지지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전교조 관련).

 

사실 민주화운동이나 대중운동이란게 뭐에요? 암울한 상황에서도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나 희망을 포착해 조직화내는 것입니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더 먼저 일어나는

......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의 '풀' 중에서)

 

저는 촛불이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했다고 생각합니다......"내 입에 들어갈 것을 왜 니들이 마음대로 정해? 내가 먹기 싫다는데 왜 자꾸 먹으라고 난리야" 누가 정하느냐의 문제죠. 이거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겁니다. 이부분이 손상당한 거죠.

 

정규직들이 강력한 노조의 보호를 받게 된 것, 이것이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이 널리 퍼지게 된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죠.

 

6월 항쟁 당시에 왜 대중이 거리로 나갔습니까? 대의정치가 실패했기 때문이었죠......사람들은 제도정치 안에서 변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했기 때문에 아, 이만하면 됐다, 제도정치 내에서 고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간 겁니다.

 

자기 이익만을 마음껏 추구하기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공동선을 함께 증진하는 방법을 찾고, 또 자기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대를 해야만 자기 이익을 실현할 수 있구나 깨달아야 하겠죠.

 

쉽고 재미 있게 읽을 수 있다. 이례적으로 한국현대사를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자답게 생생한 현실을 그대로 까발리는 재주가 상당하다. 일독을 권한다.

 

      2009. 6. 18.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