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장영희 외 24인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

자작나무의숲 2010. 2. 19. 20:04

장영희 외 24인이 쓴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를 읽었다. 우리 시대 작가 25인이 25명의 작가 내지 작중 인물과 가상 인터뷰를 하는 형식이다. 인터뷰어로는 장영희 교수, 고미숙 박사, 김윤식 교수, 김정란 시인 등이 나서고, 인터뷰이로는 프란츠 카프카, 서정주 시인, 김수영 시인, 조지 오웰 등이 나선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어떤 의미에서 에이헤브의 용기는 운명에 대한 도전이다. 하시라도 우리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운명을 그대로 저항 없이 받아들이지 말라. 운명에 도전하라.

 

사실 사랑 없는 자유도 없고, 자유 없는 사랑도 없는 게 아닐까요? 결국은 사랑이 자유를 만드는 거니까요.

 

화병에 잘 다듬은 꽃을 꽂는 새색시의 꽃꽂이 같은 것이 아니라 시인이라면 적어도, 이 세상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은, 다른 누군가의 손에 의해 다듬어진 것이 아닌 야생의 에너지가 철철 넘치는 그런 꽃과 별과 우주를 창조하려는 야심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은 사실은 정말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어떤 모델을 따르는 일 없이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착란, 곧 튀틀림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전복할 때 시인은 진정으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집단(집단의 가장 기초적 형태가 가족이다)에 유용하지 못한 인간은 하잘 것 없는 존재(벌레와도 같은)로 전락시키는 문명 세계의 냉혹한 폭력을 아프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카프카는.....나는 숙명적으로 타인을 나의 공간 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기주의자였다.

 

살아보니 아무리 지옥 같아도 인생은 꿋꿋하게 버티고 살아야 돼. 그래야 새로운 길도 열리니까.

 

나는 문학이란 문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장을 자연스럽게 뿜어내게 하는 삶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네.

 

저는 근대적 자본주의가 노동의 결과물을 사유화하는 것을 지탱해주는 체제라고 봅니다. 물론 이 체제에 반대합니다. 자본주의 역시 독백주의의 한 가지 형태로 보니까요. 전 근대를 대화주의 대 독백주의의 대립으로 파악합니다.

 

아직도 이 세상엔 사람 얼굴을 짓밟는 장화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리고 자유를 지키려는 노력이 줄어들면, 이내 전체주의 사조가 차오릅니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틀린다.

 

누구도 자기 몫밖엔 할 수 없소. 당신은 온 세계를 책임질 수 없소(헨리 밀러)

 

쉽고 힘찬 말로 글을 쓰려면, 두려움 없이 생각해야 하고, 두려움 없이 생각하려면, 정치적 정통에 속할 수 없다(조지 오웰).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니며 그럴 수도 없습니다(프란츠 카프카)

 

그런 감수성이 좋아 보입니다. 비극을 인지하는 능력이 없으면 행복을 꿈꾸는 능력도 부족하기 마련일 테니까.

 

오동꽃은 어제도 피고 오늘도 피고 내일도 핀다 그래서 죽음은 끝이 아니고 시작의 환(幻)이다.

 

죽음은 모차르트를 못 듣게 되는 것(김종삼 시인)

 

고통은 사람이 생명체라는 명백한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은 육체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제 속에다 장치해놓은 경보 장치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들은 자기 자신이 될 의무 외에 아무런 다른 의무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자기 자신이 됨으로써 존재의 경계를 돌파하는 사람들이지요.

 

공부에 방해되는 세 가지, 첫째는 돈, 둘째는 異性, 세째는 이름값이랍니다(성철 스님)

 

가상 인터뷰라는 책의 형식은 재미 있으나, 내용은 좀 어렵다. 

 

              2010. 2. 19.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