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나는 누구인가'를 읽으니

자작나무의숲 2009. 2. 8. 22:46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이트의 살아 있는 동안 꼭 생각해야 할 34가지 질문 '나는 누구인가'를 읽었다. 저자는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학술 전문 저널리스트다. 이 책은 철학입문서라고 볼 수 있는데, 칸트의 질문법에 따라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가?우리는 무슨 희망을 노래해야 옳은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진리, 언어, 기억, 무의식, 감정, 도덕, 안락사, 인간복제, 뇌연구, 사랑, 자유, 정의, 행복, 인생의 의미와 같은 주제에 대하여 여러 철학자, 심리학자, 뇌연구가의 견해를 재미 있게 소개하고, 저자의 정리와 의문을 덧붙이고 있다. 인상 깊게 읽은 대목은 다음과 같다.

 

니체는 인간은 사실상 동물에 불과하다는 의견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를 규정짓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충동과 본능, 원초적인의지와 한계를 지닌 인식능력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모든 철학의 줄발점은 자연스럽게 언어비판이 되는 것이다......비트겐슈타인은 선과 악이라는 단어는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은 사물을 복사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가 먼저 나서서 모럴과 관련된 모든 진술을 언어에서 퇴출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왜냐하면,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져야 하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 식의 정확한 언어에 대한 모든 아이디어가 실패로 돌아간 원인은 사실 간단하다. 한 문장의 의미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의미의 단위가 아니라, 여러 단어들의 사용을 통해서 비로소 그 의미가 형성된다는 것이다......인간의 언어는 의사소통을 함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특출한 수단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을 통해서 철학이 깨달아야 하는 점이 있다면 언어가 진리로 향햐는 접근로를 독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사회적 질서가 지닌 모순점들을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다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고, 인간은 천성적으로 선하게 태어났지만 우리의 제도로 말미암아 악하게 되었다는 것을 얼마든지 직설적으로 증명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루소). 

 

인간은 선한데 인간을 악하게 만든다는 것이 루소의 주장이었다면, 헉슬리는 인간이 악하지만 문명이 이러한 인간을 붙잡아두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이란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에 내재되어 있는 특성이 아니라, 헉슬리의 화려한 표현을 빌면 "날카롭게 단련된 칼이었고, 그 칼의 중요한 사명은 인간의 동물적인 근원을 관장하는 용의 목을 치는 것"이었다.  

 

인간에게 선한 행위를 지향하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은 칸트를 사로잡았고, 그는 모든 생물체 가운데에서 오로지 인간만이 사용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칭호로서 '존엄성'이라는 낱말을 부여하였다.

 

칸트의 고찰에 따르면 인간의 선한 행동을 보장해주는 것은 천부적인 재능이나 성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한 인간의 경제적인 형편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 바로 인간의 의지였다.

 

이타적인 행동은 자기만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선한 행위는 자기 스스로에게 보람이 있고, 개개인에게 유익한 일이 모이면 결국 공동체에 도움이 된다.

 

노엄 촘스키에 따르면 어린이들은 자신들의 뇌에 처음부터 잠재되어 있는 보편문법을 바탕으로 주변 환경의 영향에 맞추어서 그때 그때 자신의 모국어를 개발해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언어는 교육이나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몸으로 취득되는 것이고, 이렇게 취득된 언어는 마치 팔다리가 자라듯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감정은 우리의 도덕적 판단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흐리게 만들기 때문에 이성의 파트너가 아니라 오히려 적이었다. 칸트의 입장과 정반대되는 대척점에서 하우저는 도덕적인 감정이 도덕이라는 관념보다 우선이라는 이론을 주장하였다.

 

벤담철학의 출발점은 '행복이 선이고 고통은 악이다'......한 사회의 목표는 그 사회에 존재하는 고통의 양을 가능한 한 감소시키는 것이고, 동시에 사람들 또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공리주의는 어떤 행위의 동기는 제쳐두고 오로지 결과만을 고려하고, 이는 공리주의의 대표적인 결함이다.

 

생물 복제를 반대하는 이론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을 인공적으로 복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행위이다. 칸트가 이미 언급해놓았듯이 인간은 "스스로가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에 여타의 목적을위한 "이용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절대적 자유의 주체이고, 동시에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무한한 책임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사르트르 철학)

 

롤스는 재산에 대한 권리를 정치적인 기본 자유로 간주했는데, 재산이 인간이 개인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동시에 자기존중에 기여하기 때문이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이 비로소 다른 사람도 존중할 수 있고, 이러한 사람이 곧 도덕적인 행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것이 정의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롤스는 "정의로운 것은 많은 사람에게 좋은 것이다"라는 주장을 내놓았던 것이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이다. "인생의 행복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수많은 지혜가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정이다."

 

알고 보면 모든 것이 좋은 것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좋은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하다. 이것 이외에 인간이 불행할 이유는 사실상 없다! 이를 깨닫는 순간에 행복이 시작된다(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행복은 내 마음에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 언제나 나의 의지를 따르는 것에 있다(레오 톨스토이) 행복의 기초는 자기결정권의 행사와 그에 따른 실천에 있다는 것이다.

 

칸트의 경우에 인생의 의미는 자신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데 있었다. 장자크 루소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실천으로 옮기지 말아야 했다......사르트르는 이와는 달리 행동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실현시키는 데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해답을 찾고 있는 그 과정이 해답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때가 많다(로이드 알렉산더의 '타란의 대모험' 중에서).

 

다루는 주제가 포괄적이고, 등장하는 학자가 많았지만,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저자의 입담에 지루한 줄 몰랐다. 철학에 심리학 및 뇌 과학 연구를 접목시키는 시도가 눈에 띄었다. 일독을 권한다.

 

         2009. 2. 8.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