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신영복의 '더불어 숲'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6. 11. 10. 22:57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을 읽었다. 이 책은 1997년 1년 동안 중앙일보에 '새로운 세기를 찾아서'라는 기획으로 연재된 글을 모은 것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찾아 떠난 스페인의 우엘바 항구에서 시작하여 중국의 태산을 마지막으로 47군데의 여행지에서 엽서를 띄우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아테네의 디오니소소 극장에서 띄운 엽서 내용이다. 이 극장은 그리스 비극이 대부분 상연된 곳인데, 그 비극 중의 하나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소개한다. 즉, 국법을 어긴 오라버니의 시체를 매장하지 못하게 하는 크레온 왕의 명령을 무시하고 안티고네는 오라버니의 시신을 매장한다. 오라버니의 시체가 썩어가고 들짐승들에게 뜯기는 것을 차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안티고네는 동굴에 갇히고 결국 자살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신영복 선생은 안티고네의 비극을 '사람이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인간선언'이라고 말한다.

 

간디의 시신이 화장된 곳에 설치된 인도 라지가트 공원의 제단에서 간디를 회상한다. 즉, 외국제품을 불사르느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현명하다는 타고르의 반론에 대하여 간디는 그것을 불태울 때 우리는 수치심도 함께 태웠다고 대답하였다. 영어 교육을 주장하는 타고르에 대하여 간디는 영어교육은  결국 영국인이 인도인을 대하듯이 처신하는 인도인을  만들어낼 것을 우려하였다.

 

신영복 선생은 간디의 무소유사상은 현대 자본주의를 새롭게 조명하는 메세지라고 본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소유하지 않으며 쌓아 두지 않아야 하다는 간디의 무소유 이론은 거대 자본의 전횡을 포위할 수 있는 비폭력 불복종 투쟁의 경제학적 변용이면서 새로운 세기의 문명론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간디에게 진보는 삶의 단순화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토스토예프스키가 사랑한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신영복 선생은 '토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오만을 죄로 규정하고 그것을 벌할 것을 주장하였다'고 말한다. 연이어 신영복 선생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오만이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오만이건, 오만은 애정이 결핍될 때 나타나는 질병인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애정은 오만을 용납하지 않습니다'고 말한다. 토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신영복 선생에게서 나는 각성하였다.

 

신영복 선생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로마가 로마인의 노력으로 지탱할 수 있는 크기를 넘어섰을 때, 그 때부터 로마는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콜로세움이 이 모든 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상징탑이었습니다'고 말한다.

 

잉카최후의 도시 마추픽추에서는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EL Condor Pasa가 원래 페루의 작곡자 로블레스의 기타곡임임을 확인해준다. 그 노랫말 중에 '길보다는 숲이 되고 싶다'는 구절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고 말한다. 어디론가 떠나는 길보다는 그 자리를 지키는 숲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마추픽추의 마음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파리에서 신영복 선생은 '파리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타성이라는 사실입니다'라고 갈파한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생산자 협동조합에서 신영복 선생은 '일상적 실천에 우선 충실하고 다시 그 일상적 실천을 부단히 축적해가는 과정에서 전형은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고 생각합니다' 고 말한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신영복 선생의 책에는 삶에 대한 열정과 세상에 대한 지혜가 녹아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할 때 불현듯 떠오른는 문장이 가득하다. '더불어 숲'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06. 11. 10. 창원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