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법원행정처와 법원노조에 드리는 글

자작나무의숲 2006. 9. 4. 17:16
 

법원행정처와 법원노조에 드리는 글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이 글을 올립니다. 이강천 법원노조 서남지역 본부장님의 단식에도 쓰림이 없는 제가, 곽승주 법원노조 위원장님 및 이성철 법원노조 사무총장님의 삭발에도 슬픔이 없는 제가 글을 쓴다고 하여 문제해결에 무슨 도움이 있겠느냐는 생각에서 글쓰기를 주저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간절히 사랑하고 그랬기에 14년 이상을 몸담아 온 사법부가 벼랑 끝에 몰리는 시점에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에 두서없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서울남부지법의 사태를 둘러싼 최근의 대립을 보면서 법관과 일반직원 간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고, 목이 터져라 절규하는데도 제게는 그 만큼의 심각함이 와 닿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 잘못입니다. 필시 제가 선민의식에 빠졌거나 아니면 이기주의에 사로잡혀서 동료의 문제를 나의 문제보다 덜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이건 현실입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여 그 감정에 동조가 되지 아니한다면, 나아가 문화 내지 관행에서 비롯된 문제라면 좀 더 긴 호흡을 갖고 그 이유를 따져서 해결책을 모색해야지, 우리 사이의 간격을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2003년 대법관 임명제청을 둘러싸고 첨예한 의견대립이 있었을 때 대화로써 문제를 해결한 전통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상생의 정신으로 대화합시다. 우선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코트넷 게시판의 기능을 원상복구해 주십시오.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분들도 코트넷 게시판이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한번쯤 호흡을 가다듬고 글을 씁시다.

  그리고 적절한 형식으로 대화를 합시다. 법원노조에서 주장하는 7대 요구사항을 포함하여 이번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는 방안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대화합시다. 법원노조에서는 7대 요구사항의 근거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해주십시오. 법원행정처에서는 당장 실천가능한 내용이 있다면 정책에 반영해주시고, 당장 실천할 수 없다면 그 이유나 실천계획을 설명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법원행정처장의 진퇴를 거론하는 이야기는 이제 삼갑시다.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 상대방의 사퇴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제 기억으로는 법원행정처장님이, 2005년도 대법관 임명제청에 즈음하여 법원노조에서 대법관 후보로 추천했을 정도로, 합리적인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외람되게 여러 말씀을 드렸고 이 글이 이 사태 해결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지만, 사법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침묵했다는 비판만큼 듣고 싶지 않아 이 글을 올렸습니다. 널리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2006. 5. 9. 법원 인터넷 게시판에 창원지방법원 판사 문형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