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판중심주의와 그 적들

자작나무의숲 2006. 10. 8. 21:28

최근 1달간 검사와 변호사의 역할에 대한 이용훈 대법원장님의 말씀이 회자되었습니다. 

이 사태는 대법원장으로서 타 직역의 역할에 대하여 적절하게 발언했느냐를 형식으로 하고 있지만, 그 실질은 공판중심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공판중심주의란, 법정에서 조사한 증거를 중심으로 재판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이는 당연한 이야기인데,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공판중심주의란 말이 새삼스레  강조되는 이유는 그 동안 이 원칙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공판중심주의의 참 모습을 알기 위해서 그 적들을 나열해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신문조서 및 진술조서에 무심코 또는 의도적으로 넣어 놓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은 진실로 받아들인다'
'전관변호사가 판사실을 방문하거나 전화를 이용하여 판사에게 안부를 묻는 척하면서 양형에 영향을 가하려고 애쓴다'
'확인되지도 않는 양형사실을 수사기록 모퉁이에서 꺼집어 와서 양형이유로 삼는다'
'법정증언은 늘 피고인측에 의하여 왜곡되는 것이고 수사기록 진술조서는 늘 왜곡할 시간적 여유 없이 진실되게 작성된 것이다'
'수사기관은 공무원인데 사심에 의하여 사건을 조작하겠느냐'
변호사는 보수를 받고 하니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사건을 왜곡한다'
'범행 수단, 방법 및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방청석에서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공판중심주의란, 만인이 지켜보는 법정에서 심증을 형성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법정은 공개와 투명을 생명으로 하고 공정한 조건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법정은 우선 공개와 투명을 생명으로 합니다. 법원조직법에는 심리의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국가의 안전보장, 안녕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만 비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고, 실제로 강간 사건을 비롯한 성폭력 범죄를 제외하고 비공개로 재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법정은 공정한 조건이 보장됩니다.

피고인에게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여 억울함을 호소할 있는 무기를 제공합니다. 증인에 대하여 신청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상대방에게도 질문할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합니다. 진실은 공정의 조건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입니다. 어쩌면 공개, 투명, 공정은 형제일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사회지도층 범죄 사건에 관하여, 수사기록에 나오는 범죄의 수단과 방법 및 결과가 법정에서 낱낱이 공개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고, 전문가의 증언으로 범죄의 심각성이 강조되었을 때, 변호인이 제출한 양형자료들이 검사에 의하여 탄핵되는 과정을 거쳤을 때 온정주의적 판결을 쉽게 내릴 수 있을까요?
공판중심주의가 공정하고 적정한 결론을 보장할  지도 모릅니다.

 

공판중심주의가 헌법 및 법률의 요청이고 정당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를 구현하는 데 많은 제약이 있음도 숨길 수 없습니다.

판사를 비롯한 소송관계인의 타성, 심리시간의 부족, 법정의 부족, 증인의 비협조, 위증사범에 대한 엄정한 처벌 등이 우선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공판중심주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관하여 논쟁할 때가 아니라 공판중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이것이 사법부 수장의 발언을 단서로 벌어진 논쟁을 각 직역의 역할에 부응되고 국익에 부합되게 승화하는 길일 것입니다.


                          2006. 10. 8. 문형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