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봉평의 소금

자작나무의숲 2025. 6. 28. 10:16

1. 친구
내게는 오랜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고 대학교 때 자취를 같이 하였다. 그는 내게 문학을 알려주었고 나는 그에게 법학을 알려주었다. 그는 1985년 소설 '솔바람 눈바람'으로 대학문학상 입선을 하였다. 나는 그에게 계속 소설을 쓰라고 요구했고 그는 내게 다음 작품을 주겠다고 하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그는 계속 작품 활동을 미루다가 비로소 2025 봄 '문학나무' 신인추천작품상을 수상하였다.

'봉평의 소금' 그 작품 제목이다. 문학나무 통권 94호에 실렸다.

2. 독후감
그의 소설은 '봉평 하면 바다 냄새가 난다'로 시작한다.
심사를 한 윤후명 작가는 '봉평 하면 바다 냄새가 난다'는 첫 문장에 이르러 눈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김훈 작가는 첫 문장을 쓰는 게 매우 어렵다고 했는데 일단 성공한 셈이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등장한다. 왜 메밀꽃을 소금에 비유했을까? 주인공은 의문을 표시한다. 내 친구의 말버릇이다.

주인공은 강원 지역 대학교수로서 한국현대문학 전공자로 나온다. 내 친구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서 국어 교과서를 집필하였다. 그는 내게 물었다. 황순원 소설가가 왜 유명한 줄 아냐고. 그는 답하였다. 교과서에 실렸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했다. 교과서를 집필하는 내 친구가 작가보다 위구나.

소설에는 심화백과 술샘다방 마담을 둘러싼 음탕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 친구는 평소 음탕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는 필시 독자들의 호기심을 노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나에게는 '메밀꽃이 숨이 막힐 지경이던가요? 그렇게 물어야 했다. 이렇게 남달리 색다르게 물을 능력이 있다면 문학동네 혹은 그 주변에 사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문학동네 주변에 사는 사람으로서 드는 생각이다.

3. 탄핵선고 후 저녁
탄핵선고를 마치고 관사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라면을 꺼내고 냄비에 물을 넣고 가스불을 켜려고 하는 순간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혼자 있을 거 같아서 전화를 했다며 만두를 사 갈테니 같이 먹자고 한다.

나는 친구 때문에 좋아하는 라면이 아니라 친구가 사온 만두와 찐빵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필명 '완경재'는 무슨 뜻인 줄도 모르겠다. 하기야 그가 올해 소설을 기고한 것도 내가 2015년 11월호 문학사상에 '문학 속의 재판'을 기고한 것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친구야 축하한다.

2025. 6. 28.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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