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소설)

삼국지

자작나무의숲 2016. 10. 11. 21:59

1. 개괄

나관중이 짓고 황석영이 옮긴 소설 <삼국지>를 13년만에 다시 읽었다.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으로서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의 반대되는 역사관으로 재해석한 바탕 위에서, 오랜 세월 동안 민간의 아야기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삼국지 이야기를 한꺼번에 묶었다. 소설삼국지의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다. 정사 삼국지는 위나라 임금인 조씨 일가에게만 황제의 호칭을 붙여 천하의 패권이 위에 있다고 기록하고, 소설 삼국지는 유비의 촉한을 정통왕조로 내세운다.


2. 발췌

유도는 엎드려 아뢴다. "이제 나라의 존망이 위급하온데, 폐하께서는 환관의 무리들과 술이나 드시고 계십니까?"

황제는 의아하다는 듯이 되묻는다.

"이렇듯 태평세월인데, 나라가 위태롭다니 무슨 말이오?"


그까짓 닭을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나가서 간단히 해결할 터이니, 온후께서는 구경만 하십시오.


사도 양표가 말한다. '그런 터에 까닭없이 종묘를 없애고 황릉을 버리신다면, 백성들이 놀라 동요하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천하를 움직이기는 쉬우나 안정시키기는 지급히 어렵사오니, 승상께서는 한번 더 생각해서 결정하십시오' 


"왕윤은 길게 가지 못할 것이외다. 착한 사람은 나라의 기강이요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국가의 법이거늘, 기강을 없애고 법을 폐하여 어찌 오래 갈 수 있겠소? (마일제)


"내가 맏아들과 조카를 잃었어도 이렇게 슬프지 않거늘, 오진 전위를 생각하면 뼈에 사무치게 애통하구나."

유달리 부하를 아끼는 조조의 진심어린 말을 듣고 모여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번 하비성을 잃었을 때 관우가 정한 세 가지 약조를 승상께서는 이미 응낙하셨습니다. 이제 옛주인이 원소의 군중에 계신 것을 알았으니, 옛 맹세를 돌이켜 생각할 때 어찌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밖으로 나온 현덕은 무심코 자신의 넓적다리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넓적다리에 두둑하니 살이 오른 게 너무도 한심스럽게 여겨진 탓이다.


오래 전부터 유표가 선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미워한다기에 찾아가 보았더니, 한낱 허명인 것을 알았소이다. 선한 것을 좋아한다지만 능히 쓰지를 못하고, 악한 것을 미워한다지만 능히 물리치지를 못하는데, 그래 가지고서야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원직)


장군께서 패업을 이루시려거든 북쪽은 천시를 얻은 조조에게 양보하고, 남쪽은 지리를 손에 넣은 손권에게 양보한 다음, 인화를 얻으십시오. 먼저 형주를 손에 넣어 근거로 삼고 다시 바로 서천을 취해 기반을 세우고, 조조 손권과 더불어 정족지세를 이루십시오(제갈공명)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유현덕은 아두를 받아들자마자 땅바닥에 내던지는 것이 아닌가. "이까짓 어린 자식 하나 때문에 하마터면 내 큰 장수를 잃을 뻔했구나!" 조자룡은 황망히 허리를 굽혀 팽겨쳐져 우는 아두를 안아들고 눈물을 흘리며 절한다.


한나라의 원수를 갚는 일은 공적인 것이지만 형제의 원수를 갚는 것은 사사로운 일입니다. 바라건대 사사로운 일은 잠시 미루시고 천하를 중히 여기소서(조자룡) / 짐이 아우의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천하를 손에 넣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유비)


예로부터 여러 말을 들으면 밝고 한쪽 말만 들으면 어둡다 했으니 청컨대 폐하께서는 숙고하소서(마량)


하물며 신처럼 재주가 미약한 사람이 어찌 위태로움을 겪지 않고 천하를 평정할 수 있겠습니까(제갈공명 출사표 중에서).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나,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의 뜻이니 억지로 될 일이 아니로다(제갈공명)


무릇 다스림에는 법도가 있어 위아래가 서로 간섭하지 않아야 합니다...이 모든 일을 친히 하자면 장차 몸은 고단하고 정신은 괴로워 마침내 한 가지도 이뤄내기 어려울 것입니다(양옹).


사마염은 위의 대통을 이어 국호를 대진이라 하고 태시 원년(265)으로 개원하여 천하에 대사령을 내렸다. 마침내 위는 망했다.

...이로써 삼국이 진제 사마염에게 돌아가 천하가 하나로 통일되었다.


3. 소감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무수히 등장한다. 조조도 유비도 쓴소리를 싫어한다. 심지어 쓴소리를 들은 그 자리에서 쓴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참형을 명한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한다. 쓴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듣기 싫다. 그러나 쓴소리 하는 사람에게 무거운 책임을 묻지 않는 것, 나아가 쓴소리를 경청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고 쓴소리를 들어 고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2016. 10. 11.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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