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톨스토이
톨스토이가 쓴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다시 읽었다.
톨스토이는 1844년 카잔대학 동양어학부에 입학하였고, 이듬해 법학부로 옮겼지만 아카데믹한 학문에 불만을 느껴 그만두고,
야스나야 폴라냐로 돌아왔다. 1856년 장교로 퇴역한 후에는 조정원으로서 농민과 지주와의 분쟁을 중재하기도 하였다.
톨스토이에게 인생이란 선에 대한 희구다. 따라서 그에게 인생의 의의는 선에 대한 노력 속에 있다. 즉, 그가 바라보는 인생의
목적은 선이며, 사람은 모두 이 목적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사랑이 필요하다.
톨스토이는 1886년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출간하였는데, 그 때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로 세계적인 작가가 된
뒤였다.
2. 이반일리치
이반일리치는 마흔 다섯에 항소법원 판사로 재직하다 사망했다. 동료 판사들은 이반일리치의 죽음으로 자신들에게 일어날 자리 변동에 대한 생각 이외에 절친한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죽은 사람이 내가 아니라 그여서 참 다행이야! 라는 안도감만을 느꼈다. 미망인은 남편의 죽음으로 어떻게 하면 나라에서 돈을 더 타낼 수 있겠냐에 관심을 쏟는다.
이반일리치는 법률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고, 주지사 촉탁 관리, 예심판사, 검사보, 검사를 거쳐 판사가 되었다.
그는 유능하고, 쾌활하고 서글서글하고 사교적이었지만,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일은 엄격히 실천하는 사나이였다.
그는 아내의 신경질이 늘어나고 고집이 세질수록 점점 더 자기 생활의 중심을 일로 옮겼다. 5,000루블의 연봉과 부임수당
3,500루블을 받는 판사로 임명되자 멋있는 집을 구하고 그의 관심사가 집안 장식으로 옮겨가자 새로운 직무에 기대했던
만큼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어느 날 입 속에서 야릇한 냄새가 나고, 왼쪽 배가 좀 이상하고 옆구리에 아픔을 느끼기 시작하자, 인간의 병이나 건강상태가
그의 흥미의 중심이 되었다. 그가 병이 난 지 3개월째가 되자, 머지않아 그가 자리를 비울 것인지, 자기의 존재에 의해 살아온 인간을 압박하는 짓을 그가 머지않아 그만둘 것인지 하는 점에 주변사람들의 흥미가 집중된다. 그 와중에 그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 한 명 나타난다. 그를 위해 언제나 뒷설거지를 하러 와 주는 취사 담당 하인 게라심이었다. 이반일리치는 소리를 내어
울고 싶었으며 모든 사람으로부터 애무를 받거나 동정을 받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자기는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규칙적으로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정말 그렇다. 사회적으로 보면
자기는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반비례해서 생명이 발 밑에서 도망쳐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보시다시피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임종을 앞두고 그는 '모두 잘못되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그렇지만 죽으면 편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3. 무서운 진실
이반일리치는 죽는 순간까지 그 직무와 기계적인 생활에 몰두해서 살다가 죽음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자신이 참다운 생할을 한 적이 없다고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가볍고 유쾌하고 고상하게'를 추구했던 이반일리치의 삶이 이 무서운 진실 앞에 무너졌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친구다. 트럼프 놀이를 같이 할 정도의 우정만 있을 뿐 죽음을 앞두고 같이 울어줄 친구가 없었다. 그에겐 소명이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5,000루블의 지위뿐 판사로서 갖추어야 할 소명은 보이지 않았다. 그에겐 가족이 없었다. 병든 아내를 귀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아내와 딸이 있었다. 자신을 동정하는 아들은 어렸다.
이반일리치에게 부족한 것이 우리에게 있는가?
2016. 8. 15.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