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자작나무의숲 2016. 5. 7. 13:57

1. 개괄

장자크 루소가 쓴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읽었다. 저자는 1712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계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나 철저하게 주변인의 삶을 살았다. 1728년 프랑스 안시에서 운명의 여인 바랑 부인을 만나 그녀의 주선으로 트리노의 수도원 보호시설로 보내졌다. 이 책은 루소가 1776년 가을부터 1778년 7월 2일 뇌출혈로 사망하기 전까지, 인생의 온갖 파란을 겪은 후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겨진 주제 '모든 것에서 떨어져나온 나, 나 자신은 무엇인가'를 두고 자기 자신에 대한 내적 성찰과 회한, 명상, 그리고 몽상의 체험을 기록한 작품이라고 한다. 


2. 발췌

마침내 나는 이 세상에서 나 자신 말고는 형제도, 이웃도, 친구도, 교제할 사람도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나는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은 쉽게 감수하지만, 닥쳐올지도 모르는 고통은 두렵다.


사람들과 운명이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자. 투덜대지 말고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우자. 모든 것이 결국에는 순리를 따르게 되어 있으니, 조만간 내 차례가 올 것이다.


갖가지 극심한 고통도 그것이 가져다주는 확실하고도 대단한 보상을 아는 사람에게는 제 힘을 잃고 만다.


자신이나 남에게 이득도 손해도 끼치지 않는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것은 허구다.


나는 흔쾌히 선해를 하려면 구속 없이 자유롭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과, 의무가 되는 것만으로도 선행의 즐거움은 내게서 모두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도 나는, 인간의 자유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절대로 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늘 원했고 자주 마음속에 품었던 자유이다. 내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빈축을 샀던 것도 이 자유 때문이었다.


번영을 누리고 있는 그런 사람들 중 누군가가 되기보다는 아무리 비참해도 나 자신으로 있는 편이 훨씬 낫다.


우리가 일어나는 재난 속에서 우리는 결과보다 의도에 더 집착한다. 지붕에서 떨어진 기왓장이 우리를 더 많이 다치게 할 수는 있어도, 악의적인 손이 일부러 던진 돌만큼 우리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


욕구가 그리 많지 않고 자기를 다른 사람들과 자주 비교하지 않을 때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량해진다. 반면 많은 욕구를 갖고 평판에 지나치게 집착할 때는 본질적으로 사악해진다(에밀 중에서).


나는 자식들을 고아원에 보낸 일이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나를 몹쓸 아버지로 왜곡하기에 충분했는데,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확대하고 가다듬어 내가 아이들을 싫어한다는 명백한 결론을 이끌어냈다. 


자식들을 고아원에 넣었다는 데 대한 비난이 약간의 말재간으로 쉽게, 아이들을 싫어하는 몹쓸 아버지라는 비난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 까닭은 바로, 다른 방도를 취했을 경우 훨씬 더 나쁘고 피하지도 못할 내 자식들의 운명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자식들의 장래에 보다 무관심했더라면, 직접 키울 수 없는 내 처지로서는 아이들 버릇을 망쳐놓을 아이들 엄마와 괴물로 만들어놓을 외가 친척들이 기르도록 맡겨야 했을 것이다.


3. 소감

루소는 일생 동안 매일 산책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이 완성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2016. 5. 7.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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